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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조 슈퍼 예산, 뒷감당은 누가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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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정훈
장정훈 기자 중앙일보 팀장
장정훈 산업 2팀 차장

장정훈 산업 2팀 차장

내년도 정부 예산이 사상 최초로 500조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올해 469조원의 예산도 슈퍼 예산으로 불렸으니, 513조원의 내년도 예산안은 말 그대로 ‘초슈퍼 예산’이다. 정부와 여당은 내수 침체와 저성장 기조가 심화하고 미·중 무역분쟁으로 수출까지 줄고 있어 최대한 재정을 풀어야 한다며 초슈퍼 예산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번 정부의 예산 증액 속도는 이미 아찔할 정도다. 현 정부는 2017년 사상 최초로 400조원이 넘는 예산을 갖고 출발했다. 내년도 예산안이 확정되면 임기 3년 만에 113조원이 급증하게 된다. 정부 예산은 2005년 처음 200조원을, 2011년 300조원을, 2017년 다시 400조원을 넘어섰다. 100조원 증가하는 데 6년씩 걸렸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선 이 주기가 3년으로 짧아졌다.

예산은 이렇게 급증하고 있지만 경기가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내년도 예산안은 상생형 사회 일자리 창출, 저소득 취약계층의 소득기반 확충, 바이오·헬스 등 8대 선도산업 육성 등이 골자다. 정부가 올해 슈퍼예산을 짜며 내걸었던 경기 활성화, 소득주도 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에서 포장만 달라졌을 뿐이다. 내년도 예산안에 새로운 건 수소·5세대 이동통신(5G)·인공지능(AI) 등 신산업 육성과 소재·부품산업 지원 예산이 추가된 정도다.

500조 처음 돌파한 내년 예산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500조 처음 돌파한 내년 예산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정부는 올해 슈퍼 예산도 모자라 6조원 가까운 추가경정 예산까지 끌어다 쓰고 있다. 하지만 경기 활성화는커녕 몰락하는 자영업자의 아우성은 높고, 수도권 공단엔 매물로 나온 공장이 줄 서 있다. 소득주도 성장과 공정경제는 구호만 요란할 뿐 역대 최악의 고용 참사와 소득 양극화를 낳았다. 각종 규제에 가로막힌 혁신 성장은 싹을 찾기 힘들다. 상반기가 마무리된 현시점까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받아든 성적표치고는 참담하다.

정부의 예산을 뒷받침해야 할 세수도 이미 빨간불이 켜졌다. 당장 올해 기업들은 실적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전체 세수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법인세 감소가 확실시된다. 코스피 상장사 574개의 상반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37% 줄었다. 이중 전체 법인세의 20% 이상을 내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상반기 영업이익이 각각 58%, 80% 감소했다. 두 회사가 낸 지난해 반기 법인세만 9조원 정도였지만 올해는 2조원이 채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씀씀이는 늘고 세수가 구멍 나면 결국 부담은 국민과 미래 세대의 몫으로 남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에도 이미 성과가 없는 걸로 판명난 정책들에 예산을 쏟아붓겠다는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국민과 청년들 등골을 언제까지  휘게 할 참인가.

장정훈 산업 2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