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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칼럼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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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 이 집 주인 맞아?' 퍼뜩 이런 생각이 스치더란다. 집을 소유한 것은 맞을지언정 그 집을 누리며 사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피천득 선생은 진실을 일찍이 간파했다. 수필집에 능참봉이 부럽다고 썼다. 산 좋고 물 좋은 명당에 묘만 써도 좋은데 그곳을 지키고 사니 얼마나 훌륭하냐고 했다. 강변 별장의 참주인은 가끔 들르는 소유주가 아니라 매일 아침 강물에 비치는 햇살이 눈부셔 잠을 깨는 별장지기란 얘기다.

집을 보금자리로만 본다면 이 말이 옳다. 하지만 집은 상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투자(또는 투기)의 대상이 된다. 잘만 고르면 몇 년 새 가격이 두 배 이상 뛰기도 한다. 그만큼 수익성 있는 상품이 어디 있는가. 그러니 빌라의 주인도 그리 아쉬워할 필요는 없겠다.

그런 높은 투자수익률이 분명 정상은 아닐 터다. 거품이라고들 하는데 문제는 카푸치노 커피처럼 거품이 상품의 자연스러운 일부라는 것이다. 정부의 태도를 보면 정말 그렇다.

정부는 두 달 전 분당을 '버블 세븐' 중 하나로 지목하면서 2~3년 내 거품이 꺼져 집값이 30% 떨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판교 신도시 중대형 아파트의 실분양가를 분당 시세의 90%로 책정하는 것은 거품을 굳히고 청약자에게 그것을 떠안기는 게 아닌가 말이다. "채권입찰금액을 적게 쓰면 될 게 아니냐"는 정부의 변명도 비겁하다. 분양을 포기하라는 말밖에 안 된다.

상황이 이러니 거품 없는 '에스프레소' 지역에서 "우리도 거품 맛 좀 보자"며 아줌마들이 모이는 것이다. 아파트의 적정가를 부녀회에서 결정한다는 것이 난센스긴 하지만 다른 동네 아파트 가격이 '따따블' 되는 사이, 그보다 못할 것 없는 자기네 아파트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니 오죽 열 받겠느냐는 말이다. 담합지역이라는 곳에 가봤더니 "아파트를 산 뒤 매주 '가치상승 모임'에 나가 목소리를 높이면 돈 번다"고 코치해 주는 부동산 업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카푸치노에 대한 에스프레소의 상대적 상실감의 표현, 그 이상이 아니다.

정부는 종부세 같은 세금폭탄으로도 거품이 꺼질 기미가 안 보이자 부녀회에 화풀이를 했다. 담합지역의 공시가격을 시세의 100%까지 올리겠다는 말폭탄으로 아줌마들과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결국 슬며시 꼬리를 내렸다. 처음부터 안 될 일이었다. 담합이 잘못된 것은 사실이지만 집값 상승의 주요인을 부녀회 탓으로 돌리는 건 용렬한 짓이다. 담합은 가격 형성의 부차적 요인인 데다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해프닝들을 치르면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또 한번 신뢰를 잃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내 집 마련을 위해서라도 집값은 꼭 잡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기 어려워 보인다. 노 대통령이야 고향인 봉하마을에 집을 짓고 살면 그만이겠지만 담합을 하려야 할 수 없는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은 저 멀리 달아나고 있다.

중국동포가 읽던 '프랑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나는 거대한 위가 나를 삼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침이 와서 나를 내쫓기 전까지 천천히 소화시키는 것 같았다." 큰 집에서 느끼는 위압감에 대한 묘사지만 100평 빌라는 고사하고 내 몸 하나 누일 만한 보금자리라도 갖고 싶은 게 서민들의 꿈이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