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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국가 신뢰 해쳐”…한국에 책임 떠넘기며 추가 보복 준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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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호 03면

지소미아 종료 후폭풍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3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전용기편으로 하네다공항을 떠나기에 앞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3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전용기편으로 하네다공항을 떠나기에 앞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날 침묵을 지켰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3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청구권 협정을 위반하는 등 국가 간 신뢰 관계를 해치는 대응을 유감스럽게도 한국이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 24일 개막하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침묵하다 G7 참석 출국 전 입 열어 #‘냉정한 일본’ 부각하는 전략 쓸 듯 #트럼프 앞세워 한국 압박 가능성 #일각선 “규제 강화 3탄 얘기 나와”

아베 총리는 “일본으로선 청구권 협정 위반 상태의 해소를 통해 먼저 국가 간 신뢰 관계를 회복하고 약속을 지켜줬으면 하는 기본적인 방침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그들이(한국이) 국가와 국가 간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신뢰 관계를 계속 해치고 있지만)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 환경을 생각하면서 (한·일 갈등이) 일·미·한 협력에 영향을 줘선 안 된다는 관점에서 대응해 왔다”며 “향후에도 미국과 확실히 연계하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고 일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나왔던 지난 22일 밤과는 달리 이날은 전체적으로 차분한 대응을 보였다. 아베 총리는 전날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지 않으며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은 오후 9시30분 남관표 주일대사를 외무성으로 초치했다. 전날엔 “어디 마음대로 해보라”는 감정적 대응이 주류였다면 이날 아베 총리의 발언은 차갑고 냉정한 쪽이었다.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방위상은 “실망을 금하지 못하겠다. 매우 유감”이라면서도 “한국 측에 (이번 결정의) 재고와 현명한 대응을 요구한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반복하는 상황에서 일·한, 일·미·한 연계는 중요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은 지소미아 종료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화이트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예정대로 오는 28일 시행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산케이 신문도 이날 ‘냉정함’을 강조하는 정부 내 기류를 전했다. “일본 정부가 당황하거나 놀랄 필요가 없다”는 정부 고위관리의 발언을 인용하면서다. 일본으로선 당분간 한국을 직접 자극하는 조치를 자제하면서 사태 악화의 책임을 모두 한국에 돌리는 태도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미 국방부가 한국의 결정에 대해 이례적으로 “실망했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앞장서서 한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한마디로 ‘이성을 잃은 한국, 냉정한 일본’을 부각하는 전략으로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프랑스 G7 정상회의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회담이 예정돼 있다. 지소미아 문제가 당연히 테이블에 오를 것이고, 아베 총리로선 절친인 트럼프 대통령과 미 정부를 앞세워 한국 압박에 나서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한국에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보복 조치도 검토할 전망이다. 아사히 신문은 이날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와 화이트국가에서의 한국 배제에 이은) 규제 강화 제3탄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 한국 측이 더욱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주요 신문들도 지소미아 종료를 1면 톱으로 다루며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1면 해설 기사에서 “양국 관계에 타격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북한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안전 보장의 기반인 일·미·한 3개국 연계를 흔드는 사태”로 규정했다. 한·미·일 정보 공유의 삼각형이 흔들리면서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한국에 체류하는 상황에서 종료 결정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미국과 한국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사히 신문도 “일·미·한 공조가 흔들리면 이를 환영하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북한일 것”이라며 “일·미·한 관계에 쐐기를 박기 위해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상공 비행에 이어) 또다시 공세에 나설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신문은 또 “지난 21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고노 외상이 ‘지소미아가 파기되지 않도록 잘합시다’라고 했더니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귀국 후 대통령께 전달하겠다’는 전향적인 태도였다”고 소개했다. 그런 상황이 돌변하면서 지난 22일 저녁 도쿄 하네다 공항으로 돌아온 고노 외상에게 “(파기) 발표를 하게 됐다”는 강 장관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처럼 급격한 한국의 입장 변화를 ‘총선 등 국내 정치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지층을 의식해 넘지 말아야 할 ‘금지선’을 넘었다”(산케이 신문)는 것이다.

자민당뿐 아니라 일본 내 야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일·미·한 연계에 큰 균열을 가져올지 모른다”며 “한국뿐 아니라 동북아 안전 보장에 있어서도 마이너스”라고 지적했다. 입헌민주당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도 “북한이 계속 발사체를 쏘아 올리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이번 결정은 유감스럽다”고 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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