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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몸통 시신' 범인 장대호, 왜 고려 정중부 사건 말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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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강 몸통 시신 사건’의 피의자 장대호(38·모텔 종업원)의 얼굴이 신상 공개 결정 후 처음으로 21일 공개됐다. 장대호는 이날 오후 1시 47분쯤 보강 조사를 받기 위해 입감 중인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를 출발해 사건을 수사 중인 고양경찰서에 출석했다. 호송차에서 내려 형사들에 의해 양팔을 잡힌 상태로 얼굴을 드러낸 장대호는 모자를 쓰지 않고 마스크도 벗은 모습이었다.

‘몸통 시신 사건’ 피의자 신상 공개 #“흉악범이 양아치 죽인 것” 주장

장대호는 잔혹하게 범행을 저질렀는데, 왜 자수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번 사건은 흉악범이 양아치를, 나쁜 놈이 나쁜 놈을 죽인 것”이라고 머리를 들고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굴이 공개됐는데 ‘반성하고 있냐’는 질문에는 “유치장에서 많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방이 죽을 짓을 한 것”이라며 “반성하고 있지 않다”라고 답했다.

‘몸통 시신 사건’ 피의자 장대호가 21일 호송차에서 내려 고양경찰서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몸통 시신 사건’ 피의자 장대호가 21일 호송차에서 내려 고양경찰서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이어 유족들에게 미안하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전혀 미안하지 않다”라고 답했다. 시신 나머지 부위를 어디에 버렸느냐는 물음에는 “모두 같은 장소(한강)에 버렸다”고 말했다. 장대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느냐는 질문에 “고려 시대 때 김부식의 아들이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사건이 있었는데 정중부는 그 원한을 잊지 않고 있다가 무신정변을 일으킨 그 당일날 (김부식의 아들을) 잡아 죽였다”며 “남들이 봤을 때는 그냥 장난으로 수염을 태운 것이지만…”이라며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경찰의 제지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전날 오후 2시 외부전문가 4명과 경찰 내부 위원 3명 등으로 구성된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신상 공개 범위는 얼굴과 이름, 나이, 결혼 여부(미혼), 성별(남자) 등으로 결정됐다. 장대호의 얼굴은 사진을 별도로 배포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 노출 시 마스크 착용 등의 조치를 하지 않음으로써 공개하기로 했다. 신상공개위원회는 “범죄 수법이 잔인하고 그 결과가 중대하다”는 등의 공개 결정 이유를 밝혔다.

장대호는 지난 8일 오전 서울 구로구 자신이 일하는 모텔에서 투숙객(32)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지난 12일 여러 차례에 걸쳐 훼손한 시신을 한강에 유기한 혐의(살인 및 사체손괴, 사체유기)로 구속됐다. 장대호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가 반말하는 등 시비를 걸고, 숙박비 4만원을 주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장대호는 지난 18일 구속 영장심사를 마치고 취재진 앞에서 “다음 생애에 또 그러면 너 또 죽는다”며 숨진 피해자를 향해 막말하는 등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장대호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과거 인터넷에 쓴 ‘진상 고객’ 대처법이라는 글도 주목받고 있다. 장대호는 2004년부터 2017년까지 13년 동안 인터넷에 수시로 글을 올렸다. 2016년에는 한 인터넷 숙박업 커뮤니티에 ‘진상’ 고객을 대처하는 방법을 올렸다. 팔에 문신이 있는 조직폭력배가 방값이 비싸다고 협박했던 일화를 설명하면서 “몸에 문신하면 흉기가 안 들어가?” “네 몸엔 흉기 안 들어가냐?”라는 말을 하면 험악했던 고객의 태도가 바뀐다고 했다.

한편 장대호는 근무 중인 모텔에 탐문수사 나온 경찰과 만난 직후 모텔 종업원 일자리를 그만두고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경기 고양경찰서 형사 2명은 지난 16일 오후 6시쯤 장대호가 살인과 사체훼손을 벌인 서울 구로구의 한 모텔을 찾아갔다. 경찰은 이날 오전 피해자 시신의 팔 부분이 발견되자 지문 감식을 통해 피해자를 특정한 후 탐문 수사에 나섰다. 지난 8일 “술을 먹었다. 모텔에서 자고 자겠다”고 가족에게 연락한 피해자의 마지막 휴대전화 발신지역이 이 모텔 부근이어서였다. 경찰은 당시 모텔 카운터 종업원에게 피해자 사진과 함께 피해자 친구 2명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들이 묵지 않았느냐”고 탐문했다.

이때 1층에서 잠을 자던 장대호가 나와 경찰이 내민 사진을 보고 “누군지 모르겠다”고 잡아뗐다. 장대호는 형사들에게 모텔 카운터와 주차장을 비춘 폐쇄회로 TV(CCTV) 화면도 보여줬다. CCTV에 최근 15일 치가 저장돼 있어야 했지만, 범행 당일인 8일과 13일 부분만 지워진 상태였다. 장대호는 “모텔이 낡아 기계가 잘 꺼지고 고장이 잘 난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이후 주변 모텔 8곳에 대한 탐문수사를 마친 뒤 장대호가 근무 중인 모텔에 용의점이 있다고 판단하고 같은 날 오후 11시쯤 모텔을 다시 찾아갔지만 장대호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경찰의 수사망이 자신에게로 향해오는 것을 체감한 장대호는 탐문 수사를 받은 이튿날 오전 1시 5분쯤 서울 종로경찰서로 가 자수했다. 장대호는 자수를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을 먼저 찾아갔지만, 직원이 인근 종로경찰서로 가라고 안내해 경찰의 초동대처가 미흡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고양=전익진·심석용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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