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법 공방 "마음은 콩밭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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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모든 일이라는 게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한은법 개정만큼 당사자인 재무부와 한은의 시각차가 큰 것은 없는 듯 싶다.
한나라 통화금융 정책의 줄기가 담겨지는 법이니 만큼 머리를 맞대고 그야말로 통렬한 고민을 할 가치도 충분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재무부와 한은이 벌여 온 논쟁의 뒤안길을 살펴보면 명분만 그럴듯했지 마음은 다른데 있지 않았느냐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양측은 모두 관치 금융의 폐해를 시정하고 금융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중앙은행법을 개정한다고 밝혀 왔으나 주요부문에 대한 양측의 의견이 마지막까지 절충되지 않은 과정을 보면 그같은 명분은 한낱 국민여론을 의식한 전시용이 아니었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양측은 연초 경제정책의 큰 구도를 잡는 중앙은행법 개정문제를 놓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티격태격 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판단, 재무차관과 한은 부총재를 공동대표로 하는 단일안 마련을 위한 협의기구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같은 논의는 한낱 무의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26일 정부안이 당정협의까지 거쳐 최종 확정되는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의 국회입법 과정에서도 한은측의 반대 로비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재무부와 한은의 모습을 이렇게 초라하게 만드는가. 그것은 바로 법을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는데서 연유하는 것이 아닌가.
재무부는 한은의 주장대로 법을 고치면 한국은행이 재무부를 능가하는 엄청난 파워를 가지게 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을 빙자해·필요이상의 권력을 가지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한은은 정부안대로라면 현행법을 오히려 개악하는 것이며 중앙은행의 정부예속이 제도화된다고 비난한다.
결국 양자의 그같은 주장에는 재무부는 재무부대로 기득권을 향유하려는 의도가, 한은은 한은대로 이번 기회에 그 동안 재무부로부터 받아온 설움을 씻어 버리자는 생각이 숨겨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직 시간은 있다. 양측은 지금부터라도 그야말로 마음을 비우고 어느 제도가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 더 유익한가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심상복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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