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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노트북을열며

북·미회담이 해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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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한반도가 '쌍둥이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7월 5일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물밑에서 2차 핵 위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 위원장은 5MW급 영변 원자로의 가동을 멈추고 사용 후 연료봉을 하나둘씩 끄집어내고 있다고 한다. 이 연료봉을 재처리하면 핵 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미사일 결의안을 채택하자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즉각 성명을 내고 "'더 강한, 다른 형태의 물리적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를 직설법으로 바꾸면 '수 틀리면 핵 실험을 강행하겠다'가 된다.

한반도는 1993년 이래 핵과 미사일 위기를 주기적으로 겪어 왔다. 그러나 지금처럼 핵과 미사일 위기가 동시에 진행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째깍거리며 돌아가는 한반도 핵.미사일 시한폭탄의 뇌관을 제거할 묘책은 없을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4'라는 산수 문제 하나만 잘 풀면 사태가 의외로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다.

5월 5일부터 두 달간에 걸쳐 진행된 북한 미사일 위기 드라마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불발이었다. 북한은 6월 1일 힐 차관보를 평양으로 초청했으나 백악관은 딱 잘라 이를 거부했다. 짐작건대 만일 힐 차관보가 평양에 갔더라면 '부시 행정부와 최초로 양자 협상을 했다'고 판단한 북한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6자회담에 복귀한다'고 발표했을 가능성이 있다.

부시 대통령은 왜 그토록 북한과의 양자 회담에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는 이 의문에 대해 7일 "(북핵 문제를) 양자 간에 다루면 옵션이 금방 바닥나며, 북한이 상황을 뒤집기 쉽다"고 말했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부시는 94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시도했던 북.미 제네바 합의 모델을 따라 하기 싫은 거다. 그 밑바닥에는 '김정일=주민을 굶기는 독재자'라는 부시 개인의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한 부시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동의할 순 없다. 우선 북한과 양자 회담을 하면 옵션이 바닥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부시 행정부는 입버릇처럼 "북한도 리비아 모델을 따르라"라고 말해 왔는데, 리비아가 핵 포기를 결정한 것은 2003년 3월부터 9개월에 걸쳐 미국과 비밀리에 양자 협상을 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백악관 말대로 양자 회담이 '나쁜 회담'이라면 왜 리비아와는 양자 회담을 해서 문제를 풀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은 5월 말 핵 문제를 풀기 위해 이란과 직접 협상한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는데, 같은 양자 회담을 이란과는 해도 북한과는 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또 제네바 합의가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것은 북한의 특기인 '제 발등 찍기'와 '북한- 파키스탄 핵 커넥션', 그리고 불발된 '클린턴-김정일 정상회담' 같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 북미 간 양자 회담을 했기 때문은 아니다.

김정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북한과 양자 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부시는 같은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81~89)이 과거 소련을 상대한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이 '악의 제국'이라고 부른 소련과 가장 많은 협상과 정상 회담을 해 전략무기제한협정(START)을 체결했다. 만일 레이건이 끝까지 '소련=악의 제국'이라는 태도를 견지했더라면 그는 그렇고 그런 수준의 보수파 대통령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레이건은 소련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는 것과는 별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열린 입장을 취했다. 그 결과 레이건은 미국의 공화.민주 모두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부시 대통령이 진정 한반도에 드리워진 핵.미사일 위기를 해결하려면 소소한 회담 형식에 구애받지 말기를 바란다. 어차피 2+4=6 아닌가.

최원기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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