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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태극기 걸린 독립유공자 가족의 한강 편의점

중앙일보

입력

독립유공자 가족들이 운영하는 편의점. 김태호 기자

독립유공자 가족들이 운영하는 편의점. 김태호 기자

14일 서울 여의도 한강 변에 있는 ‘한강여의도 2호’ 편의점. 이곳 건물엔 임시정부 요인 단체 사진이 걸려있다.

일본 맥주 없고 '보이콧 재팬' 문구 가득 #"日 잘못 인정하고 함께 발전해야"

그 옆으론 임시의정원(임시정부의 의회)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 적힌 대형 태극기가 편의점을 감싸고 있다. 한강 편의점 11곳 중 이런 대형 태극기가 걸린 곳은 두 군데다.

이런 모습을 한 이유는 두 편의점의 운영자가 독립유공자 유가족들이어서다. 서울시는 4월 운영 계약을 마친 두 편의점에 대한 다음 운영권을 독립유공자유가족복지사업조합에게 맡겼다.

이곳 편의점 전광판에서는 판매수익금은 독립유공자유가족에게 쓰인다는 안내문구가 나온다. 김태호 기자

이곳 편의점 전광판에서는 판매수익금은 독립유공자유가족에게 쓰인다는 안내문구가 나온다. 김태호 기자

독립유공자예우법에 따른 결정이다. 서울에 사는 독립유공자 후손(3대손) 약 1만7000명 중 74.2%가 월 소득 200만원 미만이라는 점도 서울시 결정에 반영됐다.

이 편의점에 매일 오전 10시 출근하는 목장균(74)씨는 광복군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 목연욱 지사는 경기 양주 출신으로, 광복군에서 활동하다가 밀정의 고발로 1944년 2월 베이징에서 붙잡혀 1년 2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목 지사는 해방 뒤에도 고문 후유증을 앓다가 1948년 별세했다. 1963년 대통령 표창이 수여됐고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독립유공자 가족 목장균(74)씨가 물건 진열을 손보고 있다. 김태호 기자

독립유공자 가족 목장균(74)씨가 물건 진열을 손보고 있다. 김태호 기자

목씨를 따라 편의점 안을 둘러봤다. 출입문에 ‘보이콧 재팬(Boycott Japan)’ 스티커가 붙어있다. 냉장고 위쪽 전광판에는 ‘판매수익금은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쓰입니다’라는 글자가 흐른다. 냉장고 문에는 ‘일본산 맥주는 팔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목장균(74)씨가 편의점 외벽에 걸린 임시정부 요인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김태호 기자

목장균(74)씨가 편의점 외벽에 걸린 임시정부 요인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김태호 기자

직원 조끼에는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보이콧 재팬 배지가 달려있다. 계산대 뒤편 담배 판매대에 일본 담배는 없다. 1호 편의점도 같은 모습이다.

“큰 태극기가 왜 걸려있나 궁금해하는 손님들에게 ‘여기 운영자가 독립유공자 가족들이다’고 설명하면 신기하다고 말해요.”

편의점 부점장을 맡고 있는 송모(25)씨의 말이다. 송씨는 “물건을 사면 저절로 독립유공자 가족에 후원이 된다는 걸 알려주는데, 그럴 때마다 손님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편의점 한 곳의 하루 매출은 600만원 정도다. 아르바이트생 임모(23)씨도 “자주 들러야겠다는 손님들이 많다”며 “손님을 상대하며 이런 내용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산 물건을 다시 팔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목씨는 “일본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비록 우리 아버지는 일본에 고초를 겪어 돌아가셨지만, 한국과 일본은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맺고 함께 발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다만 조건이 있다고 했다. 목씨는 “더 이상 일본은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부정해선 안 된다”고 말한 뒤 다시 물건 정리를 시작했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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