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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 굽이치는 허란산, 호쾌한 흉노 기마상 암각화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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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호 27면

[윤태옥의 중국 기행 - 변방의 인문학] 5464㎞ 물길 탐사

암각화로 가득 찬 허란산. [사진 윤태옥]

암각화로 가득 찬 허란산. [사진 윤태옥]

황하 5464㎞는 티베트고원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흘러 발해만으로 들어가는데 중간에 크게 북류했다가 남으로 돌아오는 구간이 있다. 란저우를 지난 황하는 허란산(賀蘭山)·인산(陰山)·뤼량산(呂粱山)에 막혀 돌아 내려오다가 둥관(潼關)에서 다시 동류를 계속한다. 이 사다리꼴 모양의 지역은 건조한 황토고원이다. 몽골어로는 오르도스(Ordos), 중국어로는 허타오(河套)라고 한다. 흉노가 중원의 사서에 주로 등장하는 지역이 바로 오르도스이다. 흉노와 중원의 관계가 좋으면 호시(互市)에서 교역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흉노는 중원의 추수에 맞춰 약탈전을 벌이곤 했다.

사다리꼴의 황토고원 오르도스 #1000개 암각화엔 유목민의 삶 #말 달리며 활 쏘는 장면 떠올라 #최근 들어선 한메이린 예술관선 #현대미술로 부활한 흉노가 반겨

동아시아 역사는 중원과 북방이 격하게 충돌했다가 휴지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흉노는 북방의 첫 번째 강자였다. 그다음 선비, 돌궐, 거란, 몽골, 여진(만주) 등이 북방의 역사를 이어 갔다. 중원이 주도한 왕조가 중원을 제대로 경영한 것은 한대 이후 송과 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중원의 식자들은 화이(華夷)란 개념으로 오랑캐를 구분하여 자신들 중심으로 역사를 썼지만, 내가 보기에 독립변수는 북방이었고, 중원은 물산이 풍부한 상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굳이 북방에 견주면 종속변수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허란산

허란산

내가 북방초원에서 흉노를 연상하고 찾은 곳은 허란산의 암각화였다. 허란산은 동서 20~30㎞이고 남북 220㎞에 이르는 산맥으로, 닝샤(寧夏) 회족자치구와 네이멍구 자치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허란산은 서쪽으로는 완만하지만 동록은 경사가 급하다. 바로 이 급경사 암석지대에 많은 암각화가 있다. 북으로는 스쮜산(石嘴山), 중간의 허란커우(賀蘭口), 남쪽의 칭둥샤(靑銅峽)와 중웨이 중닝 일대에 분포돼 있다. 닝샤의 수도인 인촨(銀川) 외곽의 ‘허란커우 암화 경구’ 계곡 양측 600여m 구간에 1000여 개의 암각화가 있다. 사람 머리를 그린 것들이 많다. 머리에 털이나 뿔을 그린 것도 있다. 변발이나 두건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다. 소와 말과 사슴, 새와 늑대 등의 동물화는 무당과 토템, 곧 샤머니즘을 보여 준다. 암각화는 단순하지만 질박하고, 소탈하지만 호방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이곳 암각화는 신석기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춘추전국 시대의 것이 많지만 서하의 문자도 있다.

순진한 목동, 모이면 최강의 군대

사서나 암각화에 묘사된 유목민의 일상이 흥미롭다. 걸음마와 함께 기마를 배우고, 말을 달리면서도 활을 쏘는 기사법(騎射法)의 달인이란 게 먼저 떠오른다. 활은 반곡궁(反曲弓)으로 사거리가 200m에 달했다고 한다. 달리는 말 위에서 몸을 돌려 적을 향해 강력한 화살을 날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이 얼마나 호쾌하고도 정교한 생사의 갈림인가. 이들은 생존환경은 척박했지만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았다. 푸른 하늘 아래 흰 구름이 떠가면 순진한 목동이었지만, 모이면 최강의 군대였다. 달리면 전격전이요 물러서면 매복전이었다. 적장자가 아니라 능력자가 권력을 승계하는 관습은 그들의 개방적 사고방식을 잘 보여 준다. 능력자가 목숨 건 경쟁을 거쳐 수장에 오르니 격동의 에너지가 넘치게 된다. 그것은 고대의 정치체제이지만 21세기 글로벌 경쟁시대와 직설적으로 통하는 느낌이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이 그것의 한 단면을 말해 주고 있다. 흉노가 고대사에서 튀어나와 현대로 이어지는 것은 북방의 맥락이라는 내 임의의 상상력이나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해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미술로도 현대로 이어져 다가왔다.

1~5 중국 북방 허란산에는 흉노를 연상케 하는 암각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암각화에는 유목민의 일상이 흥미롭게 새겨져 있다. 6 허란커우에 세워진 ‘한메이린 예술관’에 전시된 작품들. [사진 윤태옥]

1~5 중국 북방 허란산에는 흉노를 연상케 하는 암각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암각화에는 유목민의 일상이 흥미롭게 새겨져 있다. 6 허란커우에 세워진 ‘한메이린 예술관’에 전시된 작품들. [사진 윤태옥]

내가 허란커우 암각화를 처음 찾아간 것은 2010년 추운 겨울이었다. 차가운 북풍 속에서 들여다보는 절벽의 암화에서 흉노 연상을 혼자 즐겼었다. 산양 몇 마리가 바위 직벽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역사의 은밀한 메시지를 전해 주는 느낌이랄까. 몇 년 후에 황하 전체를 답사하면서 다시 찾아갔다. 절벽 위의 암화가 달라졌을 리는 없다. 안내 표지가 좀 개선됐으나 전시관의 설명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7년 전에는 없던 ‘한메이린(韓美林) 예술관’이 별채 건물로 세워져 있는 게 아닌가.

전시실로 들어서는 순간 딱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작품의 크기와 수량, 전시공간이 압도적이었다. 서예와 회화, 조형 등 미술의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그 많은 작품이 전부 한 작가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런데 그 모든 작품을 압축하는 나의 한 마디 소감은 다름 아닌 ‘흉노!’였던 것이다. 뒷다리에서 강한 힘이 느껴지는 그의 소는 초원의 거친 소였을 것 같다. 흉노의 소는 이랬을 것 같다. 농경문화의 나긋한 소는 아니다. 작품 속의 말에서는 신비한 힘이 느껴졌다. 몸뚱이 한 부분은 생략되고 다른 부분은 힘으로 강조되어 있다. 천리마가 아니라 만리마 정도는 되는 느낌이다. 한메이린의 사슴은 몸뚱이와 뿔에 꽃이 피어난다. 흉노라는 말이 단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지만 흉노의 이미지, 아니 흉노 그 자체였다.

한메이린은 다양·포용성 지닌 작가

두 번째 여행의 동반자 가운데 서예가 이경애 박사가 있었다. “한메이린은 서화가 모두 뛰어나서 조화를 이루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네요. 웅강한 필력감과 꾸미지 않은 질박한 필의도 드러내고 있군요. 자유로우면서도 거침없는 운필을 통해 물씬 풍겨 나오는 작가의 기상이 강렬합니다.” 중국 장시성의 징강산대학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한국인 화가 류시호도 여행기를 보고는 짧은 평을 보내 주었다. “고대사의 소재를 현대의 작풍으로 그렸네요. 중원의 전통적 사유와 변방의 도발적인 행위가 복합된 느낌입니다. 프리모던과 모던, 포스트 모던이라는 통시적 변화가 중국 개혁개방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와서는 공시적으로 혼재하는 미술사를 보여 주는 작품들입니다.”

한메이린은 중국의 대표적인 미술가다. 조형 디자인을 중심으로 회화와 서예, 도자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수많은 작품과 저술을 남겼다. 보수적인 중국화단에서 보기 힘든 다양성과 포용성을 함께 지닌 작가이다. 디자인에서 출발했지만 서예와 수묵, 추상과 구상 혹은 디자인과 회화의 경계를 또는 조각과 도예를 넘나들면서 광폭으로 체득한 예술 감각은 그의 출생년도를 의심케 할 만큼 독보적이다. 그는 산둥성 출신으로 올해 84세다. 우리 눈에 익숙한 그의 작품은 베이징 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푸왜(福娃)이다.

흉노를 사서가 아닌 ‘흔적’에서 음미하자는 생각으로 허란산 암각화를 찾았다가 현대미술로 되살아난 흉노도 만나게 됐다. 내가 여행한 변방에서 예술의 풍미가 가장 풍성한 곳이다. 올가을에는 역사책을 잠시 덮고 배낭 하나 메고 인촨으로 향해 보는 것은 어떠한가. <감수 류시호 중국 징강산대학 교수>

윤태옥 중국 여행객

윤태옥 중국 여행객

윤태옥 중국 여행객
윤태옥 중국에 머물거나 여행한 지 13년째다. 그동안 일년의 반은 중국 어딘가를 여행했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경계를 걷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 엠넷 편성국장, 크림엔터테인먼트 사업총괄 등을 지냈다. 『중국 민가기행』『중국식객』『길 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중국에서 만나는 한국독립운동사』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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