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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윤석열은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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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가영
이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가영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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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된 뒤 70명가량의 검사가 옷을 벗었다. 흔하지 않은 일이다. 윤 총장도 뒤숭숭한 분위기를 감지한 듯하다. 그는 6일 전입 신고식에서 검사들을 달랬다. “맡은 보직이 기대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어떤 보직을 맡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할지가 중요하다.”

윤 총장의 이력은 국민 상당수가 알만큼 인상적이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팀장으로 행한 사상 초유의 ‘생중계 하극상’ 주인공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는 너무 놀라 잠시 혼미해졌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곤 그의 기개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그에겐 ‘시베리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구·대전고검, 3년여의 유배 생활이 이어졌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버틴 끝에 그는 검찰의 수장이 됐다. 그가 6년 전 이같은 상황을 기대하고 그런 일을 했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는 당시 해야 할 일을 했고, 드라마틱한 정치 변화가 그를 살려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임명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부당한 정권의 지시를 거부하면 반드시 상응하는 보상이 따른다.”

노트북을 열며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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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부당함’의 무게 중심이 ‘지시’가 아닌 ‘정권’에 있다는 게 이번 인사에서 드러났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지휘라인을 비롯한 검찰의 소중한 자원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났다. 적폐수사 주역들은 중용됐다. 윤 총장이 검사들을 달랜 “보직보단 무슨 일을 할지가 중요하다”가 공허해진 대목이다.

이번 인사를 윤 총장이 좌우했다고 생각하는 법조계 사람들은 많지 않다. 청와대의 입김이 상당했을 것이고, 윤 총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과 박근혜 국정농단 등 적폐수사를 함께한 후배들 챙기기도 벅찼을 거다. 그래서 현 정권을 겨냥했거나 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검사들을 구해내기엔 역부족이었을 거다. 하지만 총장이 된 마당엔 좀 달라져야 한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권력에 할 말을 한 용기 있는 검사’란 호평을 물려받을 후배가 나오는 길목을 적어도 막아서서는 안 된다.

6년 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 공판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고, 자신을 따르며 눈물 흘렸던 후배들의 존재도 큰 힘이 됐다. 믿음을 잃지 않은 선배들과 국민의 성원도 든든했을 것이다. 이제 윤 총장이 후배들에게 그런 존재가 돼야 한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앞으로 검찰에 제2의 윤석열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을까. 전망은 밝지 않다. 하지만 윤 총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를 걸어본다.

이가영 사회1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