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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장 놀던 두살배기 덮쳤다···81세 운전자 "차가 안멈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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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6일 전북 전주시 우아동 한 아파트 주차장에 설치된 어린이집 간이 풀장. 이날 오전 11시 17분쯤 A씨(81·여)가 몰던 승용차가 돌진해 풀장에서 놀던 원생 3명과 보육교사 2명이 찰과상 등을 입었다. 당시 풀장에는 원생 11명, 교사 5명이 있었다. [사진 전북경찰청]

6일 전북 전주시 우아동 한 아파트 주차장에 설치된 어린이집 간이 풀장. 이날 오전 11시 17분쯤 A씨(81·여)가 몰던 승용차가 돌진해 풀장에서 놀던 원생 3명과 보육교사 2명이 찰과상 등을 입었다. 당시 풀장에는 원생 11명, 교사 5명이 있었다. [사진 전북경찰청]

"아이 1명이 차 밑에 깔려서 (어른) 여럿이 차를 들어서 꺼냈어요. 아이들은 울고불고,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르포] 5명 다친 전주 모 아파트 가보니 #어린이집서 주차장에 튜브형 풀장 설치 #원생 3명, 보육교사 2명 찰과상 등 부상 #운전자 "갑자기 속력 붙어" 급발진 주장 #경찰,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입건

6일 오후 1시쯤 전북 전주시 우아동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 바닥이 물로 흥건했다. 주차장 구석에는 공기가 빠진 튜브형 풀장(수영장)이 파란 천에 덮여 있었다. 한 주민이 "승용차 한 대가 아이들이 놀던 풀장을 덮쳤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이날 오전 11시 17분쯤 A씨(81·여)가 몰던 승용차가 아파트 내 가정어린이집에서 임시로 설치한 간이 풀장을 덮치는 사고가 난 현장이다.

어린이집 원생들이 물놀이할 때 가지고 놀던 수박 모형 공 등이 담긴 그릇. 전주=김준희 기자

어린이집 원생들이 물놀이할 때 가지고 놀던 수박 모형 공 등이 담긴 그릇. 전주=김준희 기자

전북소방본부와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당시 풀장에는 어린이집 2~3세 반에 다니는 남녀 원생 11명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원장 등 보육교사 5명도 풀장 주변에 있었지만, 돌진하는 차를 막지 못했다.

이 사고로 B군(2) 등 어린이집 원생 3명과 C씨(26·여) 등 보육교사 2명이 다쳤다. 당초 A씨 차량 밑에 깔린 B군은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병원 측은 "허리와 가슴·배 등의 피부가 쓸린 정도"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부상자들도 큰 외상은 없고, 찰과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를 목격한 주민들은 "자칫 큰 인명 사고가 날 뻔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민들은 "(A씨가 몰던) 승용차가 갑자기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 뒤 범퍼를 들이받은 뒤 오른쪽으로 꺾어 간이 풀장으로 돌진했다"고 했다. 공기주입식 풀장은 어린이집이 있는 아파트 1층 바로 앞 주차장 모퉁이에 있었다. 가로 3m·세로 4m·높이 0.5m 크기로 주차면 1개 반 공간을 차지했다. A씨 차량은 풀장을 지난 뒤 주차장 밖 화단을 넘어 아파트 통행로에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은 뒤에야 멈춰 섰다고 한다.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해당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에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에 사고를 냈다. A씨는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6일 오후 전북 전주시 우아동 한 아파트 주차장 바닥이 물로 흥건하다. 주차장 모퉁이에 공기 빠진 튜브형 풀장이 파란 천에 덮여 있다. 이날 오전 11시 17분쯤 A씨(81·여)가 몰던 승용차가 풀장으로 돌진해 이곳에서 놀던 어린이집 원생 3명과 보육교사 2명이 찰과상 등을 입었다. 전주=김준희 기자

6일 오후 전북 전주시 우아동 한 아파트 주차장 바닥이 물로 흥건하다. 주차장 모퉁이에 공기 빠진 튜브형 풀장이 파란 천에 덮여 있다. 이날 오전 11시 17분쯤 A씨(81·여)가 몰던 승용차가 풀장으로 돌진해 이곳에서 놀던 어린이집 원생 3명과 보육교사 2명이 찰과상 등을 입었다. 전주=김준희 기자

A씨는 취재진에게 "저기(아파트 단지 내 내리막길)서 차를 서행하며 내려오는데 막 속력이 붙었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가 멈추지 않고) 주차된 차 한 대를 박고 저절로 우측(풀장)으로 갔다"고 주장했다. A씨는 "차는 (타고 다닌 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이번 사고까지 포함해) 급발진이 세 차례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출고한 지 얼마 안 돼 그런 적(급발진)이 있었고, 석 달 전에도 카센터에서 (급발진이 일어나) 기둥이 무너지고 기계가 부서져 (카센터 측에) 배상했다. 자동차 회사에 항의해도 (차량 결함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고 했다.

사고가 난 풀장은 이날 오전 어린이집 측에서 설치했지만, 정확히 언제, 얼마나 자주 설치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원래부터 있던 수영장이 아니다"면서도 "(어린이집에서) 저희와 협의하지 않아 수영장이 설치된지도 몰랐다"고 했다. 한 주민은 "지난해에도 어린이집에서 풀장을 설치해 아이들이 물놀이했다"고 전했다.

6일 전북 전주시 우아동 한 아파트 주차장에 설치된 어린이집 간이 풀장. 이날 오전 11시 17분쯤 A씨(81·여)가 몰던 승용차가 돌진해 풀장에서 놀던 원생 3명과 보육교사 2명이 찰과상 등을 입었다. 당시 풀장에는 원생 11명, 교사 5명이 있었다. [사진 전북경찰청]

6일 전북 전주시 우아동 한 아파트 주차장에 설치된 어린이집 간이 풀장. 이날 오전 11시 17분쯤 A씨(81·여)가 몰던 승용차가 돌진해 풀장에서 놀던 원생 3명과 보육교사 2명이 찰과상 등을 입었다. 당시 풀장에는 원생 11명, 교사 5명이 있었다. [사진 전북경찰청]

사고 초기 "아파트 주차장에 풀장을 만드는 건 불법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으나 아파트 내 풀장 설치와 운영과 관련된 규정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파트 주차장과 통행로도 사유지로 분류돼 도로교통법에서 규정한 '도로'로 보기 어려워 '안전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있었다.

경찰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상)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전주 덕진경찰서 관계자는 "사람이 다친 사고는 도로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법이 적용된다"며 "운전 미숙과 과실 여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어린이집 원장 등에 대해서도 원생 보호를 소홀히 했는지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이번 사고처럼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전날(5일) 대구에서는 8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차와 충돌해 80대 운전자 부부가 숨졌다. 부처님 오신 날인 지난 5월 12일 경남 양산 통도사 입구에서는 김모(75)씨가 몰던 차량이 인파를 덮쳐 1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경찰은 김씨가 운전 미숙으로 갑자기 출발하면서 사람들을 덮친 것으로 봤다.

지난 2월 13일에는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주차장에서 D씨(96)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주차하려다 건물 벽과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았다. 그는 사고 후에도 차량을 멈추지 못하고 지나가던 여성까지 충돌해 숨지게 했다.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김민기(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298만6676명으로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의 9%를 차지했다. 2010년 100만명을 넘은 지 8년 만에 300만명 시대에 진입했다. 경찰은 2028년에는 고령 운전자가 전체의 22%까지 늘 것으로 내다봤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2013년 1만7590건에서 매년 10% 정도 증가하고 있다. 2017년에는 2만6713건이 발생했다. 최근 10년간 60세 이하 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는 12%가량 줄었지만, 61세 이상에서는 244%가 증가했다.

정부는 고령 운전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올 1월부터 75세 이상 운전자는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운전면허 취득과 갱신이 불가능하다. 면허갱신과 적성검사 주기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감소 방안'에 따르면 정지해 있는 물체를 파악하는 능력인 '정지 시력'은 40세부터 저하하기 시작해 60대에는 30대의 80% 수준까지 떨어진다.

서울과 부산·대전 등 자치단체들도 사고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고령 운전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교통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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