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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셰르파를 위하여…엄홍길 대장의 특별한 보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28)

인생후반부를 설계하는, 어느 기업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차 서울로 갔다가 종로에 있는 푸르메재단에 들렀다. 푸르메재단 1층에 재단장한 ‘행복한 베이커리&카페’에 들르기 위해서다. 부암동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하루를 묵고 장애우들이 운영하는 이곳에서 브런치 삼아 빵과 커피 한잔으로 식사를 대신하는데 감회가 깊다. 우리네 기부문화가 단순히 고기를 주는 단계에서 이제는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단계까지 성숙했으니 말이다.

푸르메재단은 장애아동의 치료와 재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민간단체이다. 이런 푸르메재단이 장애아동이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을 때를, 그리고 그들의 보호자가 그들을 홀로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난 이후를 걱정하고 있다.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 다양한 사업장을 마련하고 있다.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연평리 서울농원. ICT가 적용된 스마트팜으로 운영되고 있다. [중앙포토]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연평리 서울농원. ICT가 적용된 스마트팜으로 운영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런 사업장이 행복한 베이커리& 카페와 푸르메 스마트팜이다. 현재 행복한 베이커리&카페의 경우 경인 지역에 7곳, 스마트팜의 경우 남양주의 서울농원과 최근 여주의 이상훈, 장춘순 부부가 기부한 땅을 바탕으로 설립되고 있는 푸르메 스마트팜 여주농원이다. 앞으로 점점 더 늘려 갈 계획이다.

이제 이곳에서 장애아동은 어른이 된 후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더 많은 행복한 베이커리, 스마트팜이 생기도록 우리가 발 벗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달러’를 외치는 아이들 도와주고 즐거워했던 나

동남아 여행 중에 한 여성이 가방에서 학용품을 꺼내 아이들에게 건넸다. 그는 1달러를 주는 것보다 학용품을 줘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돕는 것이라 말했다. [사진 pixabay]

동남아 여행 중에 한 여성이 가방에서 학용품을 꺼내 아이들에게 건넸다. 그는 1달러를 주는 것보다 학용품을 줘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돕는 것이라 말했다. [사진 pixabay]

단순히 주는 봉사와 기부를 생각하면 해외여행 중 부끄러운 경험이 하나 있다. 동남아의 일부 국가는 아직도 한국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지의 버스 주위로 남루한 옷차림의 아이들이 몰려들어 “1달러, 1달러”를 외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맞다. 연출이다. 그 부모에 의해 이루어지는. 그때도 내 딴에는 불쌍해서 도와준다는 생각에 1달러를 건넸는데 일행 중 한 여성이 조용히 가방을 열더니 연필이며, 지우개, 공책 등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자초지종을 물으니 그 여성의 말 “쟤네한테 1달러를 건네면 쟤네는 그 맛에 길들어 평생을 구걸하며 살아갈 겁니다. 차라리 학용품을 줘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좋은 도움이지요.”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렸던지. 바로 고기를 주는 것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진정으로 돕는 일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함께 직장생활을 하고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까지 지냈던 후배와 만나서 술 한잔 나누면서 인생 3막은 돈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랬더니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한다. 물려받은 유산도 꽤 되고 대기업의 최고위 임원까지 지냈는데 뭘 더 벌려고 하냐고 물었더니 자식에게 더 물려줘야 한다는 이유다.

말문이 막혔다. 그 생각의 잘잘못을 떠나 작금에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우리네 가정의 심각한 병폐를 생각하면 그의 말이 이해되질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걸 자식에 대한 큰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다. 고기 잡는 법보다는 고기를 주는 행위에 집착해 있는 경우다.

후손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행위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경제적 풍요만 물려주는 행위가 자식에게 편안하게 무위도식하는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우려스럽다.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탄스러운 일 중, 소위 있는 집에서 부모·형제 간 구린내 나는 재산 싸움을 벌이는 일들을 보자. 없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더 가지려고, 자신만이 부유하려고 욕심을 부린 결과이다. 누가 그런 것을 가르쳤고, 누가 그런 일을 본으로 보였는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걱정이 크다.

에베레스트 셰르파를 위해 엄홍길 대장이 택한 보은 

엄홍길 대장은 자신을 도와준 셰르파를 위해 네팔에 16좌 완등을 상징하는 16개의 학교를 짓고 있다. [중앙포토]

엄홍길 대장은 자신을 도와준 셰르파를 위해 네팔에 16좌 완등을 상징하는 16개의 학교를 짓고 있다. [중앙포토]

세계최초로 8000미터급 고봉 16좌 완등의 위업을 남긴 엄홍길 대장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도운 셰르파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엄 대장은 자신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돕고 하산하다 죽은 셰르파의 죽음을 계기로 네팔에 16좌 완등을 상징하는 16개의 학교를 지어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가고 있는데 현재 16번째 학교를 짓고 있다.

엄 대장은 16개의 학교를 지어줌으로써 셰르파에 대한 고마움을 갚는 동시에 모든 셰르파의 자식이 가난과 무지에서 벗어나게끔 도와주고 있다. 푸르메재단 홍보대사이기도 한 엄 대장이 보은으로 택한 것이 바로 한번 도와주고 마는 게 아닌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기부나 봉사행위를 가진 사람만이, 사회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특별한 사람만이 행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사회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자수성가라는 말로 자신의 성공을 얘기하지만, 경제적으로나 지위로 크게 성공한 사람일수록 사회와 이웃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 점을 망각하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다른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외면한다면 그건 ‘함께, 더 오래’ 이 사회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는 삶이 된다. 자신이 사회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직접 갚기가 어렵다면 후손에게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자선단체나 재단에 기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장애아동이 성장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어쩌면 자신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경감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래도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을 등한시하겠는가.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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