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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생 선점해 폐지한다며…'전국 자사고' 다 살린 교육당국 ‘자가당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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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자사고학부모연합회(자학연) 주최로 '청소년 가족문화 축제 한마당'이 열렸다. 자학연은 "축제 형식의 집회"라며 "평화적이지만 할 말은 하는 의식있는 집회를 연다"고 밝혔다. 장진영 기자

지난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자사고학부모연합회(자학연) 주최로 '청소년 가족문화 축제 한마당'이 열렸다. 자학연은 "축제 형식의 집회"라며 "평화적이지만 할 말은 하는 의식있는 집회를 연다"고 밝혔다. 장진영 기자

교육부가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지정취소 결정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올해 평가 대상이었던 자사고 중 전국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학교는 모두 살아남았다. 반면 이번 주 교육부가 동의 여부를 결정하는 서울지역 자사고 8곳과 부산 해운대고는 일반고 전환 가능성이 크다. 교육당국이 자사고 폐지 근거로 우수학생 선점으로 인한 일반고 황폐화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전국 자사고만 유지시키는 게 정책 추진 방향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28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다음달 1일 서울지역 자사고 8곳과 부산 해운대고에 대한 지정취소 여부를 심의하는 ‘특수목적고 등 지정위원회’를 개최한다. 서울지역 학교에는 경희·배재·세화·숭문·신일·중앙·이대부고·한대부고가 포함됐다. 이들 자사고 9곳은 최근 이뤄진 서울·부산교육청의 재지정평가에서 기준점수인 70점에 미달해 탈락했다.

앞서 지난 26일 교육부는 상산고의 자사고 지위를 취소해 달라는 전북교육청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로써 상산고는 앞으로 5년간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상산고뿐 아니라 전국단위 자사고 10곳 중 올해 평가 대상이었던 학교 8곳이 모두 살아남았다. 광양제철고·김천고·민사고·북일고·상산고·포항제철고·하나고·현대청운고다. 외대부고·인천하늘고는 내년에 평가를 받는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지난 26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전북 상산고, 군산중앙고, 경기 안산동산고의 자사고 지정취소 동의 신청에 대한 검토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지난 26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전북 상산고, 군산중앙고, 경기 안산동산고의 자사고 지정취소 동의 신청에 대한 검토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상산고와 달리 서울·부산 자사고에 대해서는 교육부가 교육청의 요청에 동의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교육부가 전북교육청의 지정취소 결정을 뒤집은 가장 큰 이유는 사회통합전형 적용방식이었다. 김대중 정부에서 출범한 ‘원조 자사고’인 상산고는 사회통합전형 선발 의무가 없는데, 전북교육청이 10% 기준을 적용해 낮은 점수를 준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지역 자사고는 사회통합전형 선발 의무가 있어 이런 내용이 해당되지 않는다. 상산고와 함께 심의를 받은 안산동산고도 경기교육청의 평가가 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교육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육부의 이 같은 결정에는 이명박 정부에서 자사고를 지나치게 확대하면서 일반고가 황폐해졌다는 판단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 때는 자사고가 5~6곳에 불과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학교 다양화 300’ 정책을 추진하면서 자사고가 전국적으로 51곳으로 늘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이뤄진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의 경우 이명박 정부 당시 너무나 급속히 자사고가 늘어나면서 고교 서열화 현상이 나타났다”며 정부의 타깃이 지역 자사고라는 뉘앙스를 남겼다.

교육당국의 자사고 폐지 정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자사고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우수학생을 선점해 일반고를 황폐화시켰다는 주장을 펴왔다. 자사고가 폐지돼 우수한 학생들이 분산되면 자연스레 일반고의 면학 분위기가 좋아지고 학력도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하는 전국 자사고를 내버려 두고 지역 자사고만 없애는 게 자가당착이란 비판이다.

실제로 대부분 전국 자사고는 중학교 때 내신성적과 면접을 통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한다. 상산고·하나고·민사고 등은 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 등 주요 과목(민사고는 전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을 모집정원의 일정 배수 이상 뽑은 뒤 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가려낸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반면 서울지역 자사고들은 성적과 관계없이 추첨과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중학교 하위권 학생도 합격할 수 있다. 지원자가 모집정원의 1.5배수 이상일 때만 추첨 후 면접을 진행하고, 1.2~1.5배수일 때는 전원에게 면접기회를 준다. 1.2배수를 넘지 않을 때는 100% 추첨으로 선발하고, 지원자가 미달하면 전원 합격시킨다. 실제 2019학년도에는 서울지역 자사고 21곳 중 11곳에서 면접을 하지 않았다.

서울대 입학실적도 전국 자사고와 지역 자사고 간의 차이가 크다. 최근 3년(2017~2019학년도)간 서울대 입학 실적을 살펴보면 민사고 105명, 상산고 109명, 하나고 157명이다. 하지만 서울지역 자사고 중에는 같은 기간 서울대 합격자가 10명 내외인 곳도 있다. 경희고(9명)·중앙고(12명)·한대부고(11명) 등이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은 “시간이 갈수록 현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이 일반고 살리기가 목적이 아닌 MB정부 정책 지우기란 생각밖에 안 든다”며 “최우수 학생이 몰리는 학교는 그대로 두고 지역 자사고만 없애서 일반고가 얼마나 정상화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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