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물폭탄 구멍 "몸을 던져 막아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고양시·철도공사·소방서·시공회사 등이 복구작업을 벌인 끝에 지하철 일산선 정발산역이 13일 오전 첫차부터 정상운행을 시작했다(上). 전날 정발산역은 인근 공사장에서 흘러 들어온 흙탕물과 토사로 선로가 완전히 잠겨 열차 운행이 끊겼었다(下). 고양=변선구 기자

13일 낮 12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 정발산역.

1층 매표소와 통로가 말끔하게 정리됐다. 구석진 곳의 의자 밑과 바닥에 물기가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평소보다 깨끗하다. 지하 2층 승강장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민들의 모습과 시원하게 내달리는 지하철도 여느 때와 다름없다. 하루 전 흙탕물과 모래.자갈 등으로 아수라장이었던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서울 광화문으로 간다는 주부 이경란(35.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씨는 "하루 400㎜의 기록적인 비가 쏟아져 운행 중단된 지하철이 하루 만에 다시 달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정상 운행을 위해 구슬땀을 흘린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악의 지하철 침수 사고가 발생한 정발산역이 정상화된 것은 몸을 아끼지 않은 관계자 덕분이다. 12일 오전 8시40분 선로가 침수되면서 열차는 정발산역에 정차하지 않고 통과했다. 9시부터는 일산선의 고양시 전 구간(구파발~대화)의 지하철 운행이 중단됐다.

사고는 정발산역 근처 일산아람누리(문예회관) 신축 공사장에서 흙탕물이 흘러든 것이 원인이었다. 시공업체는 정발산역 지하 1층과 아람누리를 연결하는 길이 9m.폭 8m.높이 6.2m의 통로를 최근 뚫었다. 그리고 지하철역 옹벽과 통로를 연결하기 위해 직경 30㎝.길이 1.1m 크기의 관측용 시험통로를 역 쪽으로 굴착한 뒤 2㎝ 두께의 합판으로 임시로 막아두었다. 사고는 공사현장과 맞닿은 정발산에서 밀려 내려온 빗물과 토사가 이 연결통로를 통해 지하철역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일어났다. 합판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숴져 버린 것이다.

사고가 나자 곧바로 복구에 나선 시공업체 안전관리팀 요원 4명과 소방관들은 오전 8시30분부터 폭포수처럼 구멍으로 뿜어져 나오는 물길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조윤환(29) 안전관리팀장은 "지하철역이 완전 물바다로 변하기 전 구멍을 철제 패널로 막기 위해 물살 속으로 달려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센 물살을 당해낼 수 없어 수십 차례씩 물속에 나둥그러지는 악전고투를 했다. 이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1시간30분이나 계속됐으나 성과가 없었다. 복구팀은 안전관리팀 요원들의 구멍 막기 작업이 진전이 없자 작전을 바꿔 오전 9시 정발산에서 흘러드는 빗물을 공사 현장 옆으로 돌려 중앙로로 빼내는 작업도 병행했다. 4시간여 만인 오후 1시20분 빗물이 흘러든 연결통로를 1㎝ 두께의 철판으로 밀봉하는 데 성공했다. 일산소방서와 중앙119구조대에서 투입된 소방관, 철도공사 직원, 시공업체.고양시 관계자 등 150여 명의 팀워크가 일군 성과였다.

곧바로 소방서와 철도공사는 양수기 18대와 소방차 2대 등을 동원해 지하철 선로의 물을 퍼내는 한편 승강장을 물청소하기 시작했다. 고양시 공무원 10여 명이 가세한 끝에 13일 오전 1시에야 간신히 청소를 마칠 수 있었다. 철도공사는 신호제어시스템을 복구하고 지하철 시험운행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이때가 오전 2시40분이었다. 그리고 오전 5시19분 전동차가 대화역을 예정된 시각에 출발하면서 지하철 일산선은 완전히 정상을 되찾았다.

고양=전익진.정영진 기자<ijjeon@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