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강제징용 분쟁에도 한·미·일 안보 협력 흔들려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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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번 중·러 군용기 침범 사건을 계기로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중·러 전폭기가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멋대로 넘어온 것도 모자라 러시아 조기경보기는 영공을 침범했다. 파문이 커지자 러시아 당국은 “한국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으며 한국 조종사들이 자국 항로를 방해했다”고 부인·반발하고 있지만 고의 침범일 가능성이 크다. 하필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방한 당일에 도발이 이뤄진 것부터 찜찜하다. 강제징용 판결로 심각하게 금이 간 한·일 틈새를 더 벌리기 위한 작전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러 군용기 침범, 한·일 분쟁 틈새 노려 #북한도 신형 잠수함 개발로 군사력 증강 #GSOMIA 등 한·일 안보 협력 유지해야

북한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한·일 분쟁에 국내외 관심이 쏠린 사이, 북한은 그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가 가능할 걸로 보이는 신형 잠수함을 공개했다. 사진으로 보아 세 발의 SLBM 발사가 가능한 2000t 이상의 잠수함일 공산이 크다. 맞는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잠수함이 미 연안에 잠입하면 핵미사일로 미 본토를 쉽게 공격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본토가 공격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핵우산을 제공할지부터 불확실해진다. 지난 5월 김정은 정권은 신형 전술유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역시 구체적 성능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형태로 보아 기존의 미사일 방어체계로는 막을 수 없는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의 전력 증강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동향도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두 나라는 과거 어느 때보다 군사적으로 밀착하고 있다. 이번 침범 사건도 동북아에서 처음으로 이뤄진 중·러 연합 초계비행 훈련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북·중·러의 군사적 결속 역시 단단히 다져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반면에 이에 맞서 굳게 뭉쳐야 할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은 강제징용 갈등 등으로 금 가는 소리가 들린다. 북한의 위협이 고조돼 군사적 협력 수위를 높여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그런데도 겨우 만든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마저 깨자는 소리가 청와대에 이어 여당에서도 나온다고 한다. 개탄스러운 상황이다.

그간에는 한·일 간에 아무리 과거사 문제로 시끄러워도 경제 교류가 타격을 입은 일은 없었다. 정경분리 원칙이 지켜졌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 강제징용 갈등은 경제를 넘어 양국 간 안보 협력의 기틀까지 흔들 기세다.

철통 같던 한·미 동맹도 심상치 않다. 한반도 긴장 완화라는 명분으로 키리졸브·독수리·을지프리덤가디언 등 3대 한·미 연합훈련 모두가 없어졌다. 그나마 다음 달 실시되는 연합훈련에서는 ‘동맹’이라는 표현마저 쓰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한·일 간의 안보 협력뿐 아니라 우리 국민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인 한·미 동맹마저 약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옆 나라와의 갈등이 심해져도 생존과 안보의 토대마저 무너뜨리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