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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사일' … 이시바 전 방위청 장관이 말하는 일본 속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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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북한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일본이 주도해 만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과 각료들의 적 기지 공격 발언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국내에선 미사일 사태의 최대 수혜자가 일본이란 분석과 함께 적 기지 공격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궁금증도 크다. 집권 자민당의 방위정책 책임자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49) 전 방위청 장관을 만나 일본의 논리와 속내를 들어봤다.

-일본 관방장관과 외상, 방위청 장관이 일제히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는데.

"한국의 여론을 잘 안다. 그런데 한 가지 잘못 전달된 것이 있다. 적 기지 공격과 선제공격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적 기지 공격은 상대방이 일본을 향해 미사일을 쏘는 것이 확실하고, 그리고 연료 주입 등 준비가 이뤄졌다는 전제 조건 아래 행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공격한다면 그건 곧바로 전쟁인데, 일본이 그런 바보짓을 하겠느냐.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7분 만에 일본에 떨어진다.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당할 수는 없지 않으냐. 현재 일본은 그런 대응은 전부 미국에만 맡겨 놓고 있다. 그걸 독립국이라 할 수 있는가."

-현재 자위대의 실제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주력 전투기의 항속거리가 짧아서 북한을 왕복 못한다는데.

"전혀 (적 기지 공격) 능력이 없다고 보면 된다. 자위대 주력기는 단순한 왕복이야 되겠지만 작전을 펼칠 수는 없다. 일본이 보유한 F-15J는 미국의 라이선스를 받아 F-15를 개량, 항공자위대용으로 생산한 것인데 처음부터 북한까지 가서 정밀유도공격을 할 수 있는 각종 장비들을 제거한 채 만들었다. 한국형인 F-15K는 당연히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 사실들은 관계자들 이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럼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자는 뜻인가.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순항미사일이다. 토마호크 미사일은 미국.영국만 갖고 있는데 일본이 이를 도입하려면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F-15J의 공격능력 확대도 마찬가지다. 또 실제 작전에선 출격에 앞서 적의 레이더 기지를 먼저 무력화해야 하는데 이 역시 미국의 위성항법시스템(GPS)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핵심은 미국과의 협력에 달려 있다."

-북한의 위협을 느끼는 정도에서 한국과 일본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일본은 왜 그렇게 민감한가.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하다. 북한이 동포인 한국을 향해 미사일을 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모르지만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적어도 지금은 안 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을 향해 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대응책은 뭔가.

"미사일 방위(MD)든, 적 기지 공격력이든 확실한 대응책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서둘러도 최소 5년은 걸린다. 그동안에는 북한을 너무 몰아붙이면 안 된다. 6자회담과 한.미.일 공조 등 외교 노력밖에 없다. 물론 일본이 완벽한 대응 체제를 구축한 다음에는 미국과 손잡고 봉쇄 정책으로 나간다든지 선택지가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시험 발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과잉반응을 했다고 본다. 일본을 향해 미사일을 보낸 게 아니다.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능력은 이미 1993년 노동, 98년 대포동 발사로 알려져 있는 것이어서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 상황인데 갑작스레 유엔 결의안을 제출한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중국.러시아 등의 거부권 발동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려 들면 안 된다. 중국이 함께 할 수 있는 결의안을 만들고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 공동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의안 제출에 앞서 6자회담 의장인 중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잘 지켜보고 중국.러시아와 협의하고 설득하는 단계를 밟아야 했다."

-북한 미사일 사태를 계기로 일본이 군비 증강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우려가 한국에선 있다.

"한국인의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일본의 민주주의를 믿어달라. 70년 전 전쟁을 일으킨 일본과 지금의 일본은 다르다. 당시엔 정부에 반대하는 신문에는 종이를 공급하지 않았다. 군대도 천황의 군대였지 국민의 군대가 아니었다. 일본 방위 책임자였고 지금도 자민당의 방위 정책을 맡고 있는 내가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헌법 개정을 통해 본격적으로 군사대국화의 길을 가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현행 평화헌법 9조 1항은 간단히 말하자면 침략 전쟁을 안 한다는 것인데 이는 개헌을 해도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자위대가 군대가 아니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거짓말'이다. 그래서 전력 보유 금지 조항을 없애고 "자위와 국제평화 공헌을 위해 육.해.공의 전력을 보유한다"고 바꾸겠다는 것이다. 또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엔 회원국이면 모두가 갖는 집단 자위권을 갖자는 것이다. 요컨대 헌법 개정과 침략국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만 독립국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갖자는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주변 국가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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