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해봤어?일단 해봐! 스타트업에겐 '통큰 규제'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진상의 반짝이는 스타트업(51)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사사건건 간섭하는 구시대적 규제와 정부조직의 한계는 어찌 보면 인공지능(AI)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독극물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전 규제로 변화와 혁신을 통제하려는 악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힘없는 가젤이 혁신 만드는 초연결 시대

미국의 오션토모가 2015년 S&P500 기업들의 시장가치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1975년 무형자산 대 유형자산의 비중은 17% 대 83%였다. 그런데 2015년에는 84% 대 16%로 역전했다. 무형자산은 혁신의 결과다. 혁신이 더욱 중요해진 4차 산업혁명 시대다. 그 혁신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철학과 문화인 투명, 공유, 협력, 권한이임을 중심으로 한 토양에서 싹튼다.

무형자산의 가치가 유형자산의 가치를 앞지른 시대가 왔다. 혁신은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시스템, 데이터, 콘텐트 등이 세상을 이끌게 했다. 미래학자 돈 탭스콧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은 투명, 공유, 협력, 권한이임을 바탕으로 싹튼다고 말했다. [사진 pixabay]

무형자산의 가치가 유형자산의 가치를 앞지른 시대가 왔다. 혁신은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시스템, 데이터, 콘텐트 등이 세상을 이끌게 했다. 미래학자 돈 탭스콧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은 투명, 공유, 협력, 권한이임을 바탕으로 싹튼다고 말했다. [사진 pixabay]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는 소셜 시대 내지 초연결 시대는 거대한 800파운드짜리 고릴라가 지배하던 시대를 종식하고, 힘없고 마땅한 리더도 없어 보이는 800마리 가젤이 수많은 가치와 혁신을 만들어 낸다는 극단적 주장도 하고 있다.

이를 인지 못 하는 일부 공무원은 여전히 대마불사, 압축성장시대의 환상에 빠져 정부 주도 정책과 대기업 만능주의를 부르짖는다. 스타트업도 정부 정책에 무조건 따라야 하며, 가이드라인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스타트업과 정부, 대기업은 원래부터 상호적 관계이지, 과거 압축성장시대의 주종, 원청·하청과 같은 관계가 아니다.

혁신 성장의 본질과 거리가 먼 무능한 창업자를 지원하는 나라의 생태계 앞날은 보나 마나다. 이렇게 양성된 무능한 창업자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시장을 우습게 보면서 정부의 지원사업만 따내면 된다는 정치적 목적성에만 매달린다. 고객을 만족하게 하는 데 써야 할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정부지원을 계속 받는 데만 쓴다.

결국 가짜 스타트업이 왜곡한 시장을 진짜 스타트업이 바로 잡아야 하는 소모적 자원 낭비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여기에 면피성 정책과 눈치 보기 정책, 전시행정이 쏟아지면서 가짜 생태계가 탄생한다.

실제 한국 스타트업의 새로운 시도가 번번이 규제 때문에 좌절되는 사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포지티브 규제는 단기적으로는 사업자와 구성원을 보호하는 듯하다. 하지만 실상은 기업이 시대 변화에 적응할 기회를 빼앗아 기업가와 후대의 밥그릇을 박살 내는 상황을 만든다. 슈퍼컴퓨터조차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새로운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사전 규제를 만든다면, 기업 생태계는 규제 천국이 돼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메마를 것이다.

공유주방 스타트업 '위쿡' 김기웅 심플프로젝트컴퍼니 대표가 지난 3월 중소벤처기업부 주최로 열린 민관합동 토론회 ‘스타트업과의 동행, O2O(온라인과 오프라인 연결 서비스) 규제개선 아이디어 스타트업에게 찾는다’에서 규제 애로사항을 얘기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공유주방 스타트업 '위쿡' 김기웅 심플프로젝트컴퍼니 대표가 지난 3월 중소벤처기업부 주최로 열린 민관합동 토론회 ‘스타트업과의 동행, O2O(온라인과 오프라인 연결 서비스) 규제개선 아이디어 스타트업에게 찾는다’에서 규제 애로사항을 얘기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을 규제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업자들이 시대에 맞춰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상적이고 온당한 정부의 역할이다. ‘해봤어? 일단 해봐!’라는 도전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했네, 허락은 받았어?’ 식의 눈치 보기, 패배주의가 만연한 현실이다. 자라 보고 놀랐다고 솥뚜껑을 포함한 자라 비슷한 모든 것을 사전 규제하는 꼴이다. 진짜 자라인지 확인하고 사후 처벌해도 될 시스템을 만들 생각조차 안 하는 듯하다.

네거티브 규제는 마음껏 뜻을 펼쳐보는 자유와 혁신 정신을 최대한 보장하되 이에 대한 책임도 함께 요구한다. 혁신 성장과 네거티브 규제의 성공적 정착에 필요한 공정성 확보에 통 큰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혁신 의지를 무참히 짓밟고 타인의 노력을 부당하게 빼앗으며 사회 질서를 혼란케 하는 불공정 거래와 기술 탈취 등의 반기업적 행위에 대해선 징계 수위를 대폭 끌어올려야 한다. 실효성이 의심되는 현재의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을 최소 10배를 배상하게 하는 규정으로 개정해 강력한 처벌을 마련하는 등 책임 강화를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포지티브 규제에서 네거티브 규제로 가야

이를테면 모든 주주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하는 이익을 특정 주주에게 몰아주는, 배임·횡령과 같은 사익편취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출자제한 공정거래법도 스타트업 투자와 인수·합병 활성화를 위해 더욱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주되, 불공정하게 악용한 것이 드러나면 패가망신할 정도로 처벌을 강화하면 된다.

모든 사안마다 규제할 것이 아니라 큰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그 외의 사안에 대해서는 마음껏 시도하도록 해 수많은 새로운 기회를 신나게 창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한다. 잠재력이 큰 스타트업 창업가가 구조적 한계 때문에 죽게 내버려 두지 말자.

김진상 앰플러스파트너스(주) 대표이사·인하대 겸임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