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11일 "한·미·일 고위급 협의를 미 고위 관료의 아시아 출장을 계기로 추진했는데 일본이 소극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11~21일 아시아 순방 기간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에 관한 3국 협의를 추진했지만, 일본이 답을 주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스틸웰 차관보는 일정의 마지막 이틀(20~21일)을 비워놓아 일본 태도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11~21일 마지막 20~21일은 일정없어 #"일본 소극적, 답 아직 안 줘" 확정 못해 #라이트하이저 "두 나라가 잘 해결할 것", #멀베이니 "두 동맹 건설적 잘 해결해야" #美 고위직들 한·일 당사자가 해결 강조
김현종 2차장은 이날 오전 중앙일보 특파원과 만나 "한·미·일이 만나 좀 건설적인 방법을 찾는 게 좋은 데 아직 일본의 답이 없다"며 3국 고위급 협의 추진 사실을 공개했다. "한국과 미국은 매우 적극적인데 일본이 소극적"이라고도 했다. 김 2차장은 같은 날 오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를 만나기 위해 미 무역대표부(USTR)를 방문해선 3국 협의가 어느 정도 얘기가 됐냐는 질문에 "미국측 고위급 관료가 지금 아시아 쪽으로 출장을 가니 이 기회에 3국 관료가 모여 회담을 하려고 했는데 한·미는 적극적인데 일본 측이 소극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위급 협의가 장관급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앞서 스틸웰 차관보는 취임 이후 첫 순방 일정으로 11~14일 일본, 15~16일 필리핀, 17일 한국, 18~19일 태국 등 4개국 방문에 나섰다. 국무부는 스틸웰 차관보가 한·일 방문에선 각각 한미 및 미·일 동맹 강화 방안과 함께 지역 현안을 논의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수출규제도 다뤄질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특히 순방의 마지막 이틀인 20~21일 일정을 비워도 3국 협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김현종 2차장은 "스틸웰 차관보 순방을 계기로 3국 협의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제가 코멘트할 수 없다"고 답을 피했다.
다만 모건 오르태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한국의 우려에 관한 질문에 "미국과 국무부는 공개적으로든, 막후에서든 한·미·일 3국 관계의 강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모두 친구일 뿐 아니라 동맹"이라며 한 말이다. 원론적으로 3국 관계 강화 노력을 언급하면서도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한 것은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김현종 2차장은 이날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미국 측 상대였던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와 30여분 만나 일본의 무역규제 조치의 한·미 및 국제통상 차원의 의미에 대해 집중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면담 이후 "한·미 여러 이슈에 대해 좋은 대화를 나눴다"며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한·일) 두 나라가 잘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도울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기로 했다"고 했다. 전날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도 김 차장에게 "두 동맹국 사이에 이런 문제는 건설적으로 잘 해결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한 것처럼 미국 고위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한·일 당사자가 문제를 해결하라는 입장을 보인 셈이다.
김 차장은 이날 상·하원의원들과 면담 결과에 대해 "의회 쪽에선 동맹국 간 여러 협력할 일들이 많으니 이런 현안은 빨리 해결되는 것이 좋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표명했다"고 소개했다. 김 차장은 12일 오전 백악관을 방문해 찰스 쿠퍼먼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회동한다. 그는 쿠퍼먼 부보좌관과는 "북핵 이슈 외에도 여러 한미관계 현안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며 "미·북 실무협상 어젠다와 비핵화 최종 상태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미국의 생각을 자세히 들어볼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