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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중산층이라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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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파업을 단행하기 전까지/한낱 천조각에 불과했던 깃발/투쟁을 전개하기전까지/한낱 기계에 지나지않았던 노동자/…눈물과 함께 자각된 노동자/투쟁을 통하여 단련된 노동자/피흘리며 깨달은 동지와 적의 식별/아, 비로소 혁명의 시작을 알아버린 노동자』 (백무산『깃발이여, 피에 젖은 깃발이여』에서) 최근 한국 문단에서 주목받고있는 노동자 시인 백무산의 가슴 섬뜩한 시 한 대목이다. 그는 전기 금속노동자로 10여년간 일하면서 울산의 봄을 뒤흔들었던 노사분규현장의 참여 시인이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관념이 아닌 체험의 걱정으로 자신의 표현법에 따라 탁월한 시세계를 형성했다해서 그는 이산문학상의 뜻밖의 수상자가 되기도 했다.
7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민중문학이 초기에는 민중을 위한 서정에서 출발했지만 이젠 노동자·농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중의 실천적 목소리로 바뀌어진 것이다. 단지 깨어있는 민중으로서만이 아니라 억압과 소외의 세계를 과감히벗어나는 해방운동과 그것의 실천을 위한 사회변혁운동에로의 적극참여, 이것이 민중문화의 주조가 되면서 민중문화는 민중변혁운동의 실천에 「복무」 하게 되었다.
6·29선언이후 2년여의 곡절 많은 세월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의 양상으로 지적될 이 민중문화운동·민중변혁운동을 어떻게 설명할것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땅에 성조기 나부끼는 한 통일아니다/핵무기 숨겨두고 평화통일 아니다/반외세 자주화 반독재 민주화 투쟁속에/이 강산 긴 어둠뚫고/한라와 백두에서 불끈 솟은 불기둥으로/민중이 세워야 할 깃발…』 (집단 창작단 진군나팔 『피어린 산하』 에서) 전대협산하 수만의 대학생을 남으로 오라 북으로 가자 그 외치게한 대학생들의 집체창작시 한 귀절이다.
변혁을 위한 현실참여, 그리고 투쟁의 무기로서 복무하는 민중문화가 노사분규의 현장속에서, 통일염원 시위속에서 생성되고 다시 그운동을 고취하고 있다. 시위군중속에 나부끼는 깃발과 거대한 걸개그림, 노동자의 피를 끓게하는 노동시를 단순히 문예이론적 비판의 대상으로 삼기엔 사태가 위중하다.
이들이 결속하고 연대하는 운동의 구심점인 민중논리가 오랜 독재와 억압체제 밑에서 몸으로 부딪쳐 단련된 「견결한」 논리이고 그 논리가 노사분규 현장에서, 대학생들의 시위속에서, 그리고 전교조 사태의 회오리속에서 확산되고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각심을 갖고 중시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화현상은 단순히 세대간의 격차에서 빚어지는 늙고 젊음의 차이가 아니다.
깨어있는 민중이 되기를 부단히 독려해온 민중논리가 사회변혁을 위한 실천투쟁으로 행동하는 연대적 문화현상이다. 그렇다고해서 이 현상을 주도하는 민중세력을 불법단체·용공단체로 모두 몰아붙인다고 그 투쟁이 종식되지는 않는다.『남의 자식 바르게 가르치자는 일로 소홀했던 내자식들도 생각합니다/우리들이 가는 길의 길목 길목을 경찰이 막아선 시대/한 걸음만 앞서가면 오랏줄에 묶여가는 시대/이것이 이 시대에 태어난 우리들이 져야할 십자가라서 피하지 않고 갑니다/오랏줄이 기다리는 서울로 갑니다』 (도종환 『서울행 버스』에서) 전교조가입으로 구속된 교사시인,『접시꽃당신』의 서정시인이 스스로 선택한 십자가의 길이다. 감옥의 수감자 숫자가 늘수록 민중논리는 확산되고 더욱 은밀하게 증폭됨을 지난 시절 우리는 이미 체험했다. 사회체제의 과격한 변혁을 요구하고 그것을 혁명적으로 쟁취하려는 이민중논리의 타파대상은 누구인가.
기성체제를 옹호하는 수구세력, 점진적 개선을 주장하는 개량주의자들, 많이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을 포함한 중산층이상의 계층들이다. 급진적 변혁을 두려워하고 무언가 지킬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변혁의 걸림돌이 되고 변혁을 위해선 그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고 민중세력은 믿는다.
이제 그들의 돌팔매가 무례하고 난폭하고 편견에 가득찬 논리라고해도 돌팔매질한 쪽을 향해 비난할만한 도덕성과 논리마저 갖추고있지 못함을 안타까워 할 줄 알아야 한다. 개발독재의 어두운 그늘밑에서 자라난 중산계층이 과소비의 물신숭배에 빠졌고 가족적 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한채 시민사회의 주역으로서의 기능을 방기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자괴의 성찰이 있어야만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수레바퀴를 온전하게 굴려가는 이 사회의 중심계층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중산층이 되어야만 한다.
버릴것은 버리고 지킬것은 지킬줄 아는 단호한 의지와 논리의 단련이 어느때보다 절실하게 중산층에게 요청된다.
무턱대고 지키려든다해서 지켜지지않는다. 개혁의 몸짓없는 보수의 논리는 시대를 주도할수 없다.
노사분규, 통일열망, 전교조파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와 변혁의 갈등속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받아들일까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의식을 갖춰야 한다, 5공청산 끝났다, 교육개혁세력은 공안사범으로 다스려야 한다. 통일염원세력은 용공단체다라고 버틴다해서 체제유지가 가능하고 중간층 이상의 세력이 살아남는게 아닐것이다.
성장의 필요성과 분배의 정의를 조화롭게 갖추는 경제운용, 통일열망의 수령과 그것의 실천을 구체화시키는 통일정책의 수립, 교육민주화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그것의 합법적 절차를 준수토록 유도하는 유연한 자세가 중간계층의 합의논리로서 갖춰질 때, 이 사회의 중심논리는 민중논리의 공격앞에서 굳건하게 버틸수 있다. 깨어있는 중산층이라야만 이 사회를 지킬수 있다. 이것이 민중논리의 확산과 증폭을 막을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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