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탈락 자사고 6곳 강북…강남 이사가라 대놓고 등 떠미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울시교육청이 탈락시킨 8개 학교를 좀 보세요. 6곳이 강북이에요. 교육감이 학부모보고 강남으로 이사가라고 대놓고 등 떠미는 거 아닙니까.”

서울 13개 자사고 중 8곳 취소 #교육부 최종 동의 여부 주목 #교육청 “고교 서열화 정상화 기대” #학부모들 교육기회 박탈에 분노 #자사고·일반고 동거 1학교 2체제 #탈락한 자사고 집단소송전 땐 #내년 고입 세부 계획에도 혼선

9일 서울교육청이 재지정 평가를 한 13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중 8곳을 지정 취소하는 결과를 발표하자 해당 학교 학부모가 내놓은 반응이다.

이날 평가에서 경희(동대문)·배재(강동)·세화(서초)·숭문(마포)·신일(강북구)·중앙(종로)·이대부고(서대문)·한대부고(성동)는 기준점수(70점)를 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동성고·이화여고·중동고·하나고·한가람고는 자사고로 재지정됐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번 평가는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진행됐다”며 “경쟁 위주의 교육과 서열화된 고교 체제가 정상화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조 교육감은 평소 “자사고 폐지는 큰 시대정신의 흐름”이라고 말해 왔다.

관련기사

하지만 재지정받지 못한 학교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반발했다. 한대부고생 학부모 유모씨는 “고1인 아이에게 학교 재지정 취소 소식을 전했더니 ‘외고나 국제고 갈 걸 그랬다’면서 울음을 터뜨려 한참 달랬다”고 전했다. 지정 취소된 자사고 2학년 학생은 “왜 교육청이 자사고를 없애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교육감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전흥배 숭문고 교장은 “학교 자체평가 결과 70점을 넘어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탈락 소식에 학교가 초상집 분위기”라고 전했다. 전 교장은 “이번 평가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이라며 “교육을 정치 도구로 삼지 말고 교육자의 손에 믿고 맡겨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자율형사립고공동체연합회는 이날 “서울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시대착오적이며 부당한 평가”라면서 “행정소송 등을 통해 끝까지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은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자사고 전체를 폐지해야 하는데 당국이 소극적인 평가를 했다”며 서울교육청을 비판했다.

이날 서울을 마지막으로 24개 자사고에 대한 시·도교육청의 재지정 평가가 마무리됐다. 이 중 상산고와 해운대고, 안산동산고, 서울 8개교 등 11개교가 재지정 대상에 들지 못했다.

시·도교육청은 해당 학교를 대상으로 청문을 한 이후 교육부에 지정취소 동의를 신청한다. 교육부가 동의하면 해당 학교는 내년 3월에 입학하는 신입생부터 일반고로 전환된다.

“정권 따라 생겼다 없어졌다 학생만 피해” 중3 교실 혼란

시민단체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폐지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폐지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재학생은 기존 자사고 교육을 받지만 신입생은 일반고로 입학하는 ‘1학교 2체제’라는 기형적 형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학부모도 이 부분을 우려한다. 숭문고의 또 다른 학부모 정모씨는 “선후배가 함께하는 동아리 활동도 있는데 일반고 1학년과 3배 이상 학비를 내고 다니는 2~3학년이 융화되는 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자사고 진학을 준비 중인 중3 학생과 학부모도 혼란에 빠지긴 마찬가지다. 9일 오전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평가 결과를 들은 백모(42·서울 노원구)씨는 한숨부터 쉬었다. 백씨는 올해 중3이 된 아들을 서울 강북에 있는 자사고인 신일고에 지원하게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신일고가 서울교육청이 제시한 기준점수에 미달하면서 백씨의 계획도 무너졌다.

백씨는 “학생과 학부모가 만족해서 다니고 있는 자사고를 정부가 무슨 권리로 없애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며 “강남으로 이사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 당장 올해 입시라 난감하다”고 답답해했다.

조희연. [뉴스1]

조희연. [뉴스1]

중3 딸을 둔 김모(45·서울 영등포구)씨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김씨는 애초 자녀를 상산고와 같은 전국 단위 자사고에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산고가 올해 전북교육청 평가에서 탈락하면서 진로 계획을 급히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됐다.

김씨는 “정권에 따라 고등학교가 생겨났다가 없어지기를 밥 먹듯 하니 난감하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이어 “올해가 절반 이상 지난 시점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건 비상식적이다. 적어도 아이가 중1 때는 진학하려는 고교가 어떻게 될지 결정이 돼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시·도교육청의 평가에서 재지정되지 못한 자사고들이 무더기로 행정소송을 내겠다는 것도 문제다. 9월에는 내년 고입 세부계획이 확정돼야 하는데 학교와 교육청 간 소송전이 이어지면 계획 수립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자사고 정책은 재지정 취소 이후 대안을 전혀 마련하지 않은 게 문제”라면서 “자사고가 없어지면 수월성 교육 수요는 어떻게 할 것인지, 학교 내 고교 체제가 다른 데서 오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대학입학 전형계획은 주요 사항을 바꾸려면 4년 전에 공표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며 “고교의 경우도 학생과 학부모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사전 예고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수·전민희·신혜연 기자 hspark97@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