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극단선택 일병, 업무 관련 간부의 질책·폭언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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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북한 선원 4명이 탄 소형 목선이 삼척항 내항까지 진입해 선원들이 배를 정박시키고, 해경에 의해 예인되는 과정이 담긴 폐쇄회로(CC)TV가 19일 확인됐다. 사진은 삼척항 부두에 접근하는 북한 목선(붉은색 표시). [삼척항 인근 CCTV 영상=연합뉴스]

지난달 15일 북한 선원 4명이 탄 소형 목선이 삼척항 내항까지 진입해 선원들이 배를 정박시키고, 해경에 의해 예인되는 과정이 담긴 폐쇄회로(CC)TV가 19일 확인됐다. 사진은 삼척항 부두에 접근하는 북한 목선(붉은색 표시). [삼척항 인근 CCTV 영상=연합뉴스]

 지난달 15일 북한 소형 목선이 삼척항으로 입항했던 당일 근처 소초에서 근무했던 육군 병사가 휴가를 나온 뒤 8일 한강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9일 육군에 따르면 육군 23사단 소속 A 일병(21)이 전날 오후 8시 58분께 서울 한강 원효대교 인근에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A 일병은 지난 4월부터 북한 소형 목선이 정박했던 강원도 삼척항 방파제 부두에서 가까운 소초에서 상황병을 맡았다. 상황병은 상황 일지를 작성하고, 상황이 발생하면 간부들에게 보고한다.
 육군 관계자는 “A 일병이 소초에 투입된 4월 이후 소초 간부로부터 업무 관련 질책을 받아온 사실을 확인했다. A 일병에게 폭언을 했다”며 “A 일병의 죽음과 질책과의 연관성을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군 당국 "간부로부터 업무 관련 질책과 폭언 있었다"

A 일병의 소초는 북한 소형 목선 사건 입항에 대한 경계 실패의 책임을 진 곳이다. 이 소초에선 당시 지형영상감시시스템(IVS)으로 북한 소형 목선이 삼척항으로 진입하는 장면을 찍었지만, 운용요원이 낚싯배로 판단했다. 또 근무 인원이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에서 미역을 따는 어민을 조치하느라 북한 소형 목선을 놓쳤다.

이 때문에 온라인을 중심으로 ‘A 일병이 북한 목선 경계 실패와 관련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압박을 받아 투신했다’는 내용이 떠돌았다. 이에 대해 육군 측은 “A 일병은 북한 소형 목선이 삼척항에 정박한 이후인 지난달 15일 오후에 근무를 섰다”며 “합동조사단의 조사 대상도 아니었고, 조사 당일(지난달 24일) 휴가를 갔다”고 밝혔다. 정부 소식통은 “A 일병의 소초가 경계실패 책임의 핵심으로 지목된 뒤로 부대 분위기가 상당히 안 좋아졌다”며 “이런 상황이 A 일병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고 가능성을 열어놨다.

경찰은 현장에서 휴대전화 등 A 일병의 유품을 발견했지만, 현역 군인인 A 일병에 대한 수사권을 가진 육군 군사경찰(옛 헌병)이 수사상 필요하다며 모두 가져갔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A 일병은 휴대전화 메신저의 ‘나와의 채팅’ 기능을 통해 유서 형식의 메모를 남겼다”며 “‘사람 관계가 어렵다’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단 3페이지 분량의 이 메모에는 북한 목선 경계 실패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가혹 행위 등의 내용도 적혀 있지 않았으며, 군 생활 자체가 힘들다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A 일병은 지난달 22~28일 위로 휴가를 갔으며, 이후 이달 1일부터 정기휴가 중이었다. 9일이 부대 복귀일이었다.

이철재·박사라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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