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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집회금지' 애매한 조례, 박원순·조원진 광장싸움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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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우리공화당이 지난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재설치했다. 사진은 7일 KT 광화문지사 건너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천막 4개 동(오른쪽 아래)과 세종문화회관 인도에 설치된 6개 동(왼쪽 위)의 모습. 서울시는 이날 오후 6시까지 자진철거하라는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발부했다. [최승식 기자]

우리공화당이 지난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재설치했다. 사진은 7일 KT 광화문지사 건너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천막 4개 동(오른쪽 아래)과 세종문화회관 인도에 설치된 6개 동(왼쪽 위)의 모습. 서울시는 이날 오후 6시까지 자진철거하라는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발부했다. [최승식 기자]

7일 오전 9시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 경남 진해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는 송희(59·여)씨는 “밤새 천막과 비닐을 덮고 새우잠을 자면서 천막을 지켰다”고 말했다. 전날 오후 우리공화당(옛 대한애국당)은 청계광장에 설치돼 있던 천막 4동을 떠나 이곳으로 옮겼다.

[현장에서] 정치집회 금지, 문화제는 허용 #공화당 “우리만 막나” 천막 강행

서울시와 우리공화당이 ‘광화문광장 천막 쟁탈전’을 시작한 지난달 25일이다. 우리공화당이 무단 설치한 천막을 서울시가 47일 만에 철거(행정대집행)하면서다. 이후 광화문광장은 ‘정치광장’으로 변질됐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천막 갈등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부각되길 바랄 거다”며 박 시장을 비난했다. 조 대표는 이어 “우리는 정치적 목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공화당도 얻은 게 쏠쏠하다. 한국갤럽은 이달부터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우리공화당을 포함했다. 지지율 1%가 나왔다. 광화문 천막이 주요 뉴스로 부각하면서 친박(친박근혜) 세력이 결집했다는 분석이다. 영입 인사 50인 리스트처럼 세(勢) 불리기도 물밑 진행 중이다. 박 시장도 손해가 아니다. 행정대집행 비용 2억원과 화분값 3억원을 들여 보수 진영에 맞서는 강한 시장 이미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광화문광장이 이른바 ‘가성비 좋은 정치광장’으로 변질된 건 역설적이게도 정치집회를 금지하는 조례 때문이다. 서울시가 제정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서울특별시장은 시민의 건전한 여가 선용과 문화 활동 등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광장을 관리해야 한다”(제1조)고 돼 있다. 서울시는 이를 근거로 정치집회를 불허한다.

문제가 불거진 건 지난 5월 노무현재단이 주최한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다. 서울시는 이 행사를 문화제로 허가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단체는 반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청서에 문화제로 쓰여 있고, 내용도 공연·사진전 등이어서 허가했다”며 “행사 주체에 따라서 불허하는 게 아니고 종합적으로 내용을 고려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문구를 두고 논란이 생긴다면 서울시는 조례가 분명하게 해석되도록 손을 봐야 한다. 우리공화당이 광장에 천막을 설치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것도 문제지만, 서울시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여가 선용, 문화 활동 지원 같은 추상적인 문구보다는 참석 주체를 구체화하고, 행사 내용이나 사후 관리까지 고려돼야 논란이 잦아질 것이다.

김태호 복지행정팀 기자 kim.ta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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