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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더니…특단 대책 없이 결국 '재정 주도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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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보(오른쪽 첫번째)가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사전브리핑'을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보(오른쪽 첫번째)가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사전브리핑'을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정부는 올해 하반기 경제 상황을 '엄중히' 인식한다고 했지만, 특단의 대책은 없었다. 경제 활력을 높이려고 꺼낸 대책도 결국 정부가 '독무대'로 나서는 '재정 주도 성장'이었다.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요약하면 이렇다.

경기 하강 공식화해놓고 기존 대책 되풀이 

3일 기획재정부는 제19차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고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하경정)'을 발표했다. 올 상반기 경제 정책을 평가하고 향후 경기를 진단한 뒤 하반기에 펴 나갈 정책들이 이 보고서에 담겨 있다. 정부는 이번 하경정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2.6~2.7%대에서 2.4~2.5%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경기 하강을 공식화한 것이다. 7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인 수출과 민간소비 감소 등 내수 부진에 따른 조정이었다. 그러나 하경정은 이런 경기 위축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맞춤형 대책보다는 기존 대책을 되풀이 하는 데 그치고 있다.

정부가 하경정에서 경기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꺼낸 핵심 카드는 6조7000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 통과다. 화성 복합 테마파크, 수도권 국제회의전시시설(MICE) 건립, 양재동 연구개발(R&D) 캠퍼스 조성 등 10조원 규모 기업의 건설 투자를 앞당겨 추진할 수 있는 방안도 담았다. 대·중소기업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시설을 투자하는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1년이란 시한을 정해 소폭 높이고(대기업 기준 1→2%), 생산성 향상 시설이나 에너지 절약 시설을 건립할 때 자산에 대한 감가상각 비용을 앞당겨 반영해 법인세 부담을 유예해주는 '가속상각제도'도 6개월에 한해 도입된다. 10년간 쓸 수 있는 100억짜리 건물은 매년 10억원씩 비용을 반영해야 하지만, 세무회계상의 감가상각 기간을 5년으로 줄이면 매년 20억원씩 비용으로 반영해 투자 초기에 내야 할 법인세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책들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어차피 착공해야 할 공사의 시행시기를 몇 개월 앞당기거나 한시적으로만 도입된 정책에 따라 경제 활력이 높아질 수 있을지 의문이란 것이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이번 추경이 경제의 '심폐소생기'가 되기에는 실제 경기 부양에 투입되는 예산이 너무 적다"며 "노인·청년층 단기 일자리를 만드는데 상당수 예산이 배정됐지만, 재원 마련을 위해 민간에서 세금을 걷어 투자가 위축되는 '구축 효과'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설비투자 및 수출 추이 [기획재정부]

설비투자 및 수출 추이 [기획재정부]

민간 아닌 정부 주도하는 대책…규제 완화·구조조정 대책은 빠져

문제는 대다수 경제 활력 대책들을 민간 경제주체인 가계와 기업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한다는 점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유통업계 호응이 없어 흥행에 실패한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코리아 세일 페스타'가 소비 진작책으로 제시됐다. 한류 행사인 'K컬처 페스티벌'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진행된다. 혁신적 인재를 양성하는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도 정부 주도로 구축된다.

반면 기업 투자를 늘리기 위한 규제 완화나 산업 체질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구조조정 대책은 빠져 있다. 규제 샌드박스 사례 100건을 조기에 창출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기업 민원 들어주기식' 양적 성과보다는 규제 생태계 전반의 문제를 개선하는 철학과 방향성을 갖고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곽노성 한양대 특임 교수는 "규제 샌드박스 도입 이후 양적으로는 가시적 성과가 있었던 만큼, 질적 성과를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제도와 현장 간 괴리를 줄여 기업이 느낄 수 있는 제도 정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최저임금 시장 기대 달랐다" 인정하고도 미온적 방향만 제시 

자영업 활력을 떨어뜨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시장 기대와 달랐다"고 보완 과제로 제시됐지만,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지원한다는 미온적 방향만 제시됐다. 대신 자영업자나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제로페이 사용 확대, '우리동네 맛집 알리기', 신사업 창업사관학교 확대 등을 자영업자 대책으로 내놨다. 자영업 침체를 낳은 근본 원인은 그대로 두고 지엽적 대책에만 몰두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장밋빛' 제조업 대책만 나열…"과거 정책 피드백되는지 의문" 

경제 활력의 핵심인 주력 제조업 대책 역시 '장밋빛 대책'만을 나열하고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핵심 선도 산업을 정해 자원을 몰아주는 '개발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정부는 지난 6월 발표한 신산업 지원 정책인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을 추진하고 인공지능·빅데이터·수소경제와 혁신인재 양성에 집중하는 '3+1 전략투자'를 혁신성장 대책으로 제시했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정부에서부터 미래형 혁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산업정책들이 발표됐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지원 분야만 달라질 뿐 내용은 달라지는 게 없다"며 "과거 산업정책이 제대로 평가되고 현재 정책에 피드백이 되는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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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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