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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전망 또 낮춘 정부…이번에도 "외부탓" 돌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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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둔화에도 올해 2.6~2.7% 성장을 고집하던 정부가 결국 성장률 전망치를 2.4~2.5%로 0.2%포인트 낮췄다.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0.4%)로 추락할 때만 해도, 2분기에는 빠른 반등이 가능하다는 목소리를 내던 정부의 경기 판단이 급선회한 것이다. 정부는 3일 이런 경제전망 수정치와 하반기 경기부양 대책 등을 담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

정부는 지난해 말 ‘2019년 경제정책 방향’(경방)을 내놓을 때만 해도 올해 성장률 2.6∼2.7%, 경상수지 640억 달러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수출이 지난해 12월부터 7개월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1분기 경제성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국가 가운데 꼴찌를 기록하는 등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전망치를 각각 2.4~2.5%, 605억 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에 올해 경제성장률이 2.8%를 기록할 것이라고 봤지만, 5개월 만에 2.6∼2.7%로 내린 데 이어 이번에 또다시 낮춰 잡은 것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구체적으로 민간소비 증가율은 직전 전망(2.7%)보다 0.3%포인트 떨어진 2.4%로 낮췄다. 설비투자 증감률은 플러스(1% 증가)에서 마이너스(-4%)로 바뀌었다. 건설투자는 -2.8%로 예상했다. 기존 전망(-2%)보다 감소 폭을 크게 봤다. 경기의 하강 속도가 당초 정부의 예상보다 가팔랐다는 얘기다. 정부는 반년 전의 전망을 유지하기 힘들게 된 이유로 “대외 여건 악화로 투자ㆍ수출이 어렵다”, “수출부진 등의 영향” 등을 들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최근 경제가 어렵지만 추가경정예산(추경) 효과와 이번 하반기 경방을 통해 반영할 각종 정책, 투자 프로젝트 등을 반영해 2.4~2.5%로 결정한 것”이라며 “추경이 늦어지면 마이너스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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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올해 2.5%를 넘는 성장률 달성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1%대 전망이 나오는 등 국내외 주요 경제전망 기관들이 일찌감치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고, 5월 생산ㆍ투자 지표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산업활동동향 주요 지표도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전망은 시기상 최근 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가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정부의 목표치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2분기부터 성장률이 극적으로 반등해야 하는데, 냉정히 말해 현재 주요 지표는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달성이 쉽지 않다”며 “정부의 희망을 담고, 민간에 주는 신호 등을 고려해 상징적인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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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한국 경제가 저성장 기조로 접어들었지만 이번 하반기 경방에서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관련 자료집에 나온 ‘상반기 경제운용 평가’에는 “주요 과제들이 대체로 정상 추진되면서 가시적 변화가 시작됐다”, “혁신 확산의 토대 마련”, “일자리 질이 지속 개선”, “공정경제 성과 확산” 등 자화자찬 일색이었다. 부정적인 평가는 “예상보다 크게 악화한 대외 여건”, “경기 하방리스크 확대”라는 단 두 문장뿐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경기 악화의 원인을 ▶글로벌 산업 생산 하락▶미ㆍ중 무역 갈등 심화▶반도체 가격 하락 등 지난해와 달라진 대외 여건 탓으로 돌렸다. 이억원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대외여건이 크게 나빠졌는데, 한국이 세계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특성상 수출ㆍ투자 부진이 반영됐다”며 “글로벌 경기 둔화 예상보다 심하게 진행되고 있고, 미ㆍ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하고 있으며,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점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성장률 전망치를 내렸다”라고 설명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지만 경제학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 수준을 높이고, 이에 따라 소비와 투자가 늘면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소득주도성장’의 한계가 이번 성장률 하향 조정에서 분명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와 같은 대형 외부 충격이 없고, 대부분의 나라가 성장세를 유지하는 속에서도 한국만 유독 경기가 급강하하는 것은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정책 실패를 빼놓곤 설명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현재의 정책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1분기 한국의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4%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자료: OECD

올해 1분기 한국의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4%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자료: OECD

정부는 어려운 경제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관련 정책을 적극 보강ㆍ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의 투자 여력을 끌어내기 위해 한시적으로 세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10조원 +α 규모의 ’3단계 기업투자 프로젝트‘를 통해 각종 규제나 행정절차 탓에 막혀있던 사업을 풀어주는 내용이 핵심이다. 신산업 분야 등에 정책금융을 10조원 이상 풀고, 고효율 가전을 사면 구매액 10%를 환급하고, 15년 이상 노후 차를 새 차로 바꾸면 개소세 70%를 감면하는 등의 혜택도 담았다.

▶규제샌드박스 사례 창출ㆍ확산지원▶제조업 업종별 전략 수립 및 4대 선도 신산업 추가 발굴▶서비스업-제조업 차별시정 및 서비스 핵심규제 개선▶수출금융 지원 강화 및 수출시장구조 혁신 방안 수립 등은 정부가 선정한 ‘10대 중점 관리과제’다.

자료: 기획재정부

자료: 기획재정부

하지만 대부분이 기존 정책의 확대나 반복에 머물고 있는데다, 최근 파장이 커지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 대책, 성장 회복을 이끌 ‘혁신 성장’ 전략 등은 미흡해 산업계의 우려를 덜어주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말 경방 발표 때는 경제정책 과제 1장 1절에 ‘기업투자 활성화’가 다뤄졌지만, 이번 하반기 경방에서는 ‘확장적 기조 재정과 추경’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면서 “정책 궤도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쏟아부어 정책의 구멍을 메워가겠다는 의지를 더 확실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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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부는 올해 취업자 증가 폭은 기존 전망(15만명)보다 5만명 20만명으로 내다봤다. 각종 일자리 정책 효과가 나타나면서 지난해 실적(9만7000명 증가)보다는 2배 이상 많다는 예상이다. 15∼64세 고용률은 66.8%로 직전 전망과 같았다. 소비자물가는 0.9%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직전 전망보다 0.7%포인트나 낮다. 정부는 올해 유가 하락과 농ㆍ축ㆍ수산물 가격 안정 등 주로 공급 측면에서 나타나는 안정세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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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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