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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만 골병 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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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정훈
장정훈 기자 중앙일보 팀장
장정훈 산업 2팀 차장

장정훈 산업 2팀 차장

세계 시장을 혼돈으로 내몰았던 미·중 무역분쟁은 어정쩡하게 봉합됐다. 아직은 화웨이에 대한 금수 조치가 풀린 것인지 지속하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 답은 트럼프와 시진핑의 머릿속에만 있다. 두 사람에게 최우선은 자국 내 정치적 입지일 테고, 자국 경제나 기업조차 한참 뒷순위로 밀린다. 그러니 한국 기업은 두 사람에게 세 과시를 위한 한낱 수단쯤에 불과했다. 이 와중에 이번엔 한·일 분쟁이다. 아베의 선공으로 우리 주력산업인 반도체·스마트폰·올레드TV가 위기에 처했다. 세 가지 제품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일본의 핵심소재 공급이 완전히 끊긴 건 아니지만 조달이 여의치 않아진 건 분명하다. 이번에도 우리 기업은 아베의 문재인 대통령 옥죄기용 방편에 불과한 처지다.

노트북을 열며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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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일·한 무역 분쟁의 한 복판에 선 우리 기업은 갈피 잡기가 쉽지 않다. 마땅한 해법도 없다. 한 기업인의 말처럼 “속은 타지만 입 닫고 그저 눈치만 볼 뿐”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양대 강국의 패권 경쟁이었다면, 한·일 무역분쟁은 양쪽 정부 간 외교갈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정부 간에 해결책이 나오기 전까지 기업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다”는 게 기업인들의 상투적인 넋두리만은 아니다.

하지만 미·중, 한·일 분쟁의 피해는 온전히 기업의 몫이다. 벌써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대표 기업 135개의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0%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금융정보업체 에프엔 가이드). 또 수출은 7개월째 마이너스 행진 중이다. 문제는 단순히 기업의 매출이 줄고 영업이익만 감소하는 게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수출이 줄면 내수는 더 쪼그라들고 우리네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실제 한국은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수출의 비중이 40%를 상회한다. GDP의 수출 비중이 적은 미국(8~9%)이나 일본(15%), 중국(22%)과는 상황이 다르다. 수출이 줄면 그네들이야 내수로 버틴다지만 우린 기댈 곳이 없다.

요즘 기업은 단칼에 벨 수 없는 글로벌 가치사슬 망에 꽁꽁 묶여 있다. 메모리 반도체만 하더라도 우린 전 세계 수요의 70%를 공급하는 제조 분야의 최강자다. 하지만 장비나 소재는 일본에서 들여오고, 제조한 반도체는 중국에 대량 수출하고, 중국은 이 반도체로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내다 판다. 상황이 이러니 일본과 중국, 미국이 얽히고설킨 싸움판이 길어질수록 우리 기업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진다. 정부가 무역분쟁을 기업의 선택에만 맡겨두지 말고 과감하고 명확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장정훈 산업 2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