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불법 사찰 폭로자가 쏘아올린 희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사회2팀장

문병주 사회2팀장

화려한 복귀다. 5년 7개월이란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 7급 주무관이었던 그는 3급인 행정안전부장관 정책보좌관이 됐다. 2012년 3월 “2010년 청와대가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에 개입하고 증거를 없앴다”고 폭로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행한 민간인 불법 사찰 재수사의 불씨를 살린 장진수(46) 보좌관 얘기다.

그는 불법 사찰 증거를 없앤 혐의로 2013년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선고받으면서 주경야독으로 합격했던 7급 공무원 자격을 잃었다. 이후 삶은 녹록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의기’ 덕에 의원 입법보조원, 전국공무원노조 연구원 등을 지낼 수 있었다. 2017년 초 문재인 대선 캠프에 합류해 총무지원팀장을 맡기도 했다. 그런 경력을 차치하고라도 장 보좌관의 임용은 고무적이다. 최근 부쩍 이슈화되고 있는 공익제보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공익제보는 김태우 전 검찰수사관이나 신재민 전 사무관과 같은 공무에서부터 클럽 버닝썬과 YG엔터테인먼트를 대상으로 한 제보까지 영역도 넓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공식 공익제보로 인정된 경우도 많지만 일부는 폭로성 문제 제기로 치부되기도 했다. 김 전 수사관이나 신 전 사무관이 현 정부에 맞서는 제보를 하자 “그 배경이 순수하지 않다”는 말들도 많았다. 버닝썬 수사를 촉발한 내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제보자들의 고충은 수치가 말해 준다. 국민권익위에만 지난해 113건(2016년 24건)의 보호 요청이 접수됐다. 파면 등 신분상 불이익은 물론 경제적 피해까지 당했다는 내용이다. 이와는 별개로 제보의 대상으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하고 수사를 받기도 한다. 장 보좌관처럼 꾸준히 지향점을 추구하며 이를 극복한 제보자들도 있겠지만 상당수가 ‘배신자’로 낙인찍혀 그가 속한 조직이나 생활권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신세가 되고 있다.

14대 총선을 이틀 앞둔 1992년 3월 22일 군부재자 투표가 불법으로 자행된다고 폭로했던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신고자인 메신저가 아니라 제보한 내용인 메시지에 집중하면 된다”(중앙일보 1월 21일자 29면)고 조언한다. 신고자의 도덕성 등을 검증하기보다는 신고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에 따르면 공공기관에 접수된 공익신고는 2013년 약 49만건에서 지난해 약 166만건으로 늘었다. 이 중 165만건이 처리됐다. 가만히 있었으면 묻혔을 일들에 대한 개선이 이뤄진 것이다. 제2, 제3의 장 보좌관이 계속 생겨나야 할 이유다.

문병주 사회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