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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명분·실익 모두 없는 일본의 무역보복 당장 거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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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반도체와 OLED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에 나선 것은 치졸하고 어리석은 행위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1일 한국 관련 수출관리 규정을 고쳐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 가스) 및 감광액(리지스트)과 OLED 부품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포괄적 수출허가 대상에서 개별적 수출허가 대상으로 바꿨다. 이렇게 되면 계약 때마다 90일 정도 걸리는 정부 허가와 심사를 받아야 하는 터라 한국으로서는 심각한 무역 규제를 당한 셈이다.

반도체 생산 방해 ‘경제적 선전포고’ #보복의 악순환으론 사태 악화 불보듯 #무역제재 풀고 서로 대화로 해결해야

반도체와 TV·핸드폰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아베 정권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핵심 품목의 생산을 방해하겠다는 건 ‘경제적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이는 그동안 땀 흘려 이룩한 호혜적 양국 관계의 근간을 바닥부터 무너뜨리는 현명치 못한 처사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달 29일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폐회 세션에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차별 없는 무역체제의 유지와 발전”을 강조했다. 그랬던 그가 이틀 만에 경제 보복에 앞장선 것은 참으로 품격 없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아베 총리는 “국가와 국가의 신뢰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며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칙에 맞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누가 봐도 감정 섞인 무역보복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WTO 규범에는 ‘무위반제소(non violation complaints)’라는 장치가 있다. 기술적으로는 규정 위반이 아니라도 특정 국가를 겨냥한 무역보복이 이뤄졌다면 WTO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그러니 이번 사태와 관련, 당국은 당당히 일본 정부를 WTO에 제소해 심판을 받아보는 게 옳다. 일본은 마치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늘 공정하게 처신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산 해산물 수입 금지와 관련된 지난 4월의 WTO 결정에서 보듯, 이는 큰 오산이고 착각이다.

더욱이 이번 조치는 일본 자신을 위해서도 전혀 득이 되지 않는 자해행위다. 오죽하면 일본의 유력 언론인 닛케이가 사설로 반대했겠는가. 닛케이는 어제 사설에서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통상정책을 가지고 나오는 것은 (일본) 기업에 대한 영향 등 부작용이 커 긴 안목에서 볼 때 불이익이 많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항 조치는 한국의 생산에 영향을 주는 동시에 한국 기업이 큰 고객인 일본 기업에도 타격을 준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도 날 선 비판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자유무역에 대한 일본의 위선이 드러난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명분과 실익 모두에서 하자가 있는 일본의 보복 조치는 당장 철회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측 반격에 일본의 재반격이 이어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게 뻔하다. 아무리 이웃 나라가 못마땅해도 평화롭게 공존해야 하는 게 모든 국가의 운명이다. 게다가 일본은 내년 도쿄 올림픽을 치를 예정 아닌가. 일본은 당장 보복 조치를 거두고 한·일 양국은 강제징용 문제를 슬기롭게 대화로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