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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새로운 위기 초래할 ‘북핵 동결론’을 우려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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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열기가 식기도 전에 설익은 ‘핵 동결론’이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북핵 동결은 북한이 이미 보유한 핵무기를 인정하되 더는 만들지 않도록 하는 조치다. 지난달 30일 판문점 회동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미국의 새로운 협상안이 초미의 관심사다. 이런 가운데 미언론에서 ‘북핵 동결론’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새로운 협상에서 미국이 북핵 동결에 만족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트럼프 행정부가)‘완전하게 비핵화된 한반도’로부터 골대를 옮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유력 언론이 미 행정부의 협상목표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서 후퇴할 수 있다고 나오자 미 국무부는 즉각 부인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트윗을 통해 “(북핵 동결은) 논의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도 “순전한 추측”이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란 의심이 많다.

실제 비건 대표는 지난달 말 “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합의사항을 동시적·병행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 북측과 건설적 논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한 적 있다. ‘동시·병행적’은 북한이 주장해온 비핵화 접근법이다. 북한 영변 핵단지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에 맞춰 대북제재도 일부 해제하는 것이다. 북한의 기존 핵무기와 남은 핵시설은 나중에 단계적으로 제거한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핵 보유는 상당한 기간 동안 인정받게 된다. 상황에 따라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먼저 이룬 뒤에 대북제재를 해제한다는 게 원칙이었다.

문제는 북한 핵 보유가 인정되면 남북한 사이에 심각한 안보 불균형이 생긴다는 점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기반으로 미국과 핵군축을 제기하면서 핵우산 제거와 주한미군 철수까지 들고나올 가능성도 있다. 한반도 안보상황이 더욱 복잡해진다. 따라서 정부는 ‘핵 동결론’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 비핵화에 관한 아무런 실질적인 조치도 이뤄지지 않은 만큼 섣부른 기대는 절대 금물이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회동’을 “사실상의 종전선언”“새로운 평화시대”라고 언급한 부분도 이른 감이 있다. 30년을 끌어온 북한 비핵화에 반드시 성공하기 위해선 인내심과 절제된 접근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