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달이'는 괜찮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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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 탤런트 김성은(15)양. 인기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의 '미달이'로 유명한 김양은 한때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누군가를 죽이고픈 마음도 문득 문득 들었다"고 고백했다. 10대 소녀 입에선 나오기 어려운 말이다. 왜 이토록 극단적인 상황이 조성됐을까.

김양은 어릴 때부터 끼가 많았다고 한다. 건강식품 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는 "성은이는 TV에서 노래가 나오면 상 위에 올라가 따라 부르며 춤을 춘다"고 주변에 자랑하곤 했다. 친분이 있던 방송인 이상벽씨 소개로 연기 학원을 다니게 됐다. 다섯살 때였다.

'순풍 산부인과'에 출연한 건 초등학교 입학 무렵인 1998년. 방송이 나가는 3년 동안 김양은 두 차례 학교를 옮겼다. 바쁜 방송 활동에, 전학마저 잦다 보니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또래 아이들은 그녀를 "함량 미달이다" "성적 미달이다"라며 놀려대곤 했다. 하지만 연기에 전념하며 놀림을 이겨냈다.

시트콤이 끝난 뒤 그녀는 혼자서 뉴질랜드로 떠났다. 영어 공부가 목적이었지만 '미달이'에서 벗어나고픈 마음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2년6개월 동안의 유학을 끝내고 돌아온 2004년 여름.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미달이'로 대했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쟤 미달이 아냐?"라며 수군거렸다. "너 원래 그렇게 못됐니"라며 시비거는 적도 많았다. "내가 정말 '미달'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였어요. 부모님께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어요. 정말 죽고 싶었어요."

김양의 아픈 사연은 지난해 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송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용기내서 응한 인터뷰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은 건 처음이거든요.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걸 알았죠. 방송이 나간 뒤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는 친구의 격려가 저를 자유롭게 해줬어요."

김양은 다음달 3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안의 극장 '용'에서 '강아지똥'이란 연극에 출연한다. 늘 꾸며야 하는 방송이 아닌, 솔직히 나를 드러낼 수 있겠다 싶어 연극에 도전하기로 했단다. 중학교 3학년인 그녀는 안양예고에 진학할 예정이다. 요즘엔 온라인 게임에 푹 빠져 있고, 틈틈이 친구들과 노래방에도 간다. 랩도 잘 한단다. "미달이라고 불려도 개의치 않을 만큼 여유로워졌어요. 미달이가 아닌 '연기자 김성은'으로 인식되는 건 이젠 제 몫이니깐요."

글=최민우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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