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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불어닥친 '박풍' 당권 뒤집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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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근혜 바람'(박풍)이 5.31 지방선거에 이어 또다시 휘몰아쳤다. 11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초반 열세였던 강재섭(사진) 후보가 대표최고위원에 오른 것은 박근혜 전 대표 쪽의 역할이 컸다. 강 대표 스스로 당선 직후 "강풍(강재섭 바람)과 박풍(박근혜 바람)이 합쳐졌다"고 승리 요인을 분석했다. 일찍부터 표밭을 다지며 앞서가던 이재오 후보는 두터운 '박근혜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박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선 전초전은 결국 박 전 대표의 역전 드라마로 끝난 셈이다. 강 신임대표 체제의 한나라당은 내년 대선을 준비하는 게 가장 큰 숙제다. 동시에 박 전 대표 쪽과 이 전 시장 쪽의 갈등의 후유증을 하루빨리 수습해야 한다.

◆ '박근혜 색깔' 새 지도부=당대표 선거전에선 줄곧 '이재오 대세론'이 주류였다. 대선 도전을 선언했다가 전당대회를 한 달 앞두고 당권 도전으로 선회한 강 대표에겐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대리전 양상으로 경선구도가 잡히며 상황이 급변했다.

강 신임대표는 지난 9일 "나는 이재오가 아닌 이명박 시장과 싸우는 것 같다"며 대리전 논란을 촉발했다. 이 전 시장 쪽이 합동연설회에 대의원을 동원하고, 세몰이에 나섰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전당대회장에선 "박근혜 대표를 위해 저를 버렸다(희생했다)"며 박 전 대표 쪽 대의원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물론 이 전 시장 쪽은 "이 전 시장은 중립"이라며 "오히려 박 전 대표가 당 원로와 중립적 의원들에게 전화한 리스트까지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전당대회 대의원의 표심이 요동쳤다. 이런 힘이 대의원 현장투표에서 강 대표를 1위로 끌어올렸다. 그는 일반인 상대의 여론조사에선 이재오.전여옥 후보에 이어 3위에 불과했다. '박풍'은 한나라당 안에서 막강하게 불었던 셈이다.

'친박'(박근혜 쪽)으로 분류되는 강창희.전여옥 후보도 3, 4위로 최고위원에 올랐다. '친MB'(이명박 쪽)로 분류되는 인사는 2위인 이재오 최고위원 정도다. 당연직 최고위원인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는 김형오.김무성.안택수 의원도 '친박 의원'이다. 게다가 강 대표는 2명의 최고위원 지명권을 쥐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박근혜 일색'인 셈이다.


◆ 후유증 극복은 어떻게=당내에선 대표 경선전의 후유증이 생각보다 깊을 것이란 얘기가 많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선 주자들은 "대표 경선전이 대리전으로 가면 당의 단합에 문제가 생긴다"며 개입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대선 주자 간 싸움이 현실화됐다. 한쪽은 이겼지만 다른 한쪽은 패배했다.

특히 강 대표는 "특정 대선 주자와 가까운 사람이 당대표가 되면 곤란하다"며 '공정 경선'을 전당대회 출마의 명분으로 삼았다가 스스로 대리전을 부추겼다는 일각의 비판까지 받고 있다. 그에게 대표직을 안겨준 건 '박심'이었기 때문이다.

◆ 무력한 초.재선 대표=초.재선 중심 의원 57명(미래모임)이 단일후보로 내세웠던 권영세 의원이 최고위원에 합류하지 못한 것도 당내 역학구도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들 의원은 지난 1월 원내대표 경선과 5.31 지방선거 후보 경선에서 지지 후보를 당선시키는 파괴력을 보였지만 이번 전당대회에선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반면 강한 우파 성향의 강창희.전여옥.정형근 후보가 최고위원에 선출돼 한나라당의 보수색이 짙어졌다.

강주안 기자<jooan@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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