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주장,저런하소연] 쉿! 지금은 내신과의 전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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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시험 망쳤어요."

기말고사 둘째 날(7월 4일), 1교시 영어시험을 보고 난 뒤 복도에서 마주친 아이들의 첫마디에 조금은 당황했다.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난 다음 너무 쉽게 낸 게 아닐까 내심 걱정한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이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아이들의 불만 섞인 말이 신경 쓰여 교무실로 내려오자마자 답안지를 채점해 보았다. 각 학급 평균을 확인한 결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반마다 평균점수가 중간고사에 비해 5점 이상 떨어진 것이었다. 상위권에 드는 몇몇 학생의 성적도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지금 2학년이 대학에 들어가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부터 내신 반영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대부분의 아이들은 내신 성적 올리기에 열을 내고 있다.

시험 일주일 전부터 수업 시간은 시험에 대한 아이들의 질문 공세로 정신이 없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아이들의 외출이 전혀 없는 기간도 시험을 앞둔 일주일이라 할 수 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은 교실 문을 여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다.

무엇보다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의 자세가 예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시험 시간 50분 동안 미동도 없이 마지막까지 문제를 푸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긴장감마저 감돈다. 특히 5월 중간고사에서 망친 과목들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이번 기말고사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성적 부풀리기와 내신 조작 등으로 학교 내신을 불신하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 탓일까. 일선 학교에서는 성적관리 규정을 강화하는 한편 시험과 관련된 힌트를 학생들에게 일절 주지 않고 있으며, 시험 기간 중에는 휴대전화 소지와 교무실 출입을 금하고 있다.

이에 학생들은 과목별로 주어진 출제 범위만 가지고 시험공부를 해야 하며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 등을 가지고 차분히 공부할 수밖에 없다.

우리 학급 한 여학생의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기말고사 출제 범위 내 영어 교과서 본문 지문을 다 외워 시험을 보았다고 했다. 어떤 아이는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중학교 때에는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밤샘'까지 했다며 자랑했다.

학교에서 치러지는 시험은 모의고사와 달리 학교 공부에만 충실하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만큼 수업 시간에 얼마나 집중하느냐가 승패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점수 1점에 따라 과목별 등급(1~9등급)이 결정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만큼 문제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무쪼록 아이들이 기말고사를 잘 치렀으면 한다.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며 다음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편으로 매시간 시험을 치른 후, 정답을 맞춰 보며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야말로 진정 최선을 다한 승리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려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교사로서의 작은 행복을 느낀다.

김환희 (44.교사.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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