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투톱'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나란히 고민에 빠졌다. 나 원내대표가 24일 더불어민주당ㆍ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결론낸 국회 정상화 합의문이 불과 2시간만에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거부당하면서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리더십 위기 빠진 나경원=나 원내대표는 곤혹스런 처지가 됐다. 진통 끝에 만들어낸 협상안이 같은 당 의원들에게 퇴짜를 맞으면서 나 원내대표의 당내 리더십이 위기에 몰렸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에서도 “기껏 만든 협상안을 무산시켰다”며 나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의문 부호를 달기 시작했다. 당 안팎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모양새다.
이런 나 원내대표를 두고 2014년 박영선(현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연상케 한다는 반응도 나온다. 박 원내대표는 세월호특별법 합의 과정에서 같은 당 의원들에게 합의안을 두 차례 퇴짜 맞은 뒤 두달 뒤(9월 30일)에야 최종 합의안을 도출했다. 하지만 “소통이 부족했다”(새정치민주연합), “파트너로서 못 믿겠다”(새누리당)는 비난 속에 합의안 발표 이틀 뒤인 10월 2일 원내대표직을 스스로 내놨다.
나 원내대표로선 당에서 협상안을 퇴짜 맞은 만큼, 일단 민주당과의 재협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금이라도 진전된 협상안이 있어야 한국당 의원들을 향한 설득에 나설 수 있어서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국립현충원 무명용사탑을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선거법ㆍ공수처법에 대한 민주당의 진전된 제안이 있어야 된다. 재협상하지 않으면 국회를 열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25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시간이 지나면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새로운 협상이 가능할 거란 착각은 꿈도 꾸지 말라”며 재협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정치권에서는 이에 따라 빠른 재협상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타개책 고민하는 황교안=이에 따라 한국당 안팎에서는 황교안 대표 책임론과 역할론이 함께 거론된다. 나 원내대표가 여야 협상 등 국회 현안을 사실상 도맡아 했다고는 하지만, 협상안을 암묵적ㆍ공개적으로 승인한 황 대표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게 이유다. 나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 이날 국회에서 ‘황교안 대표와 합의문을 조율했느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다 논의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일단 황 대표는 이번 합의안 부결 사태의 초기 대응 과정에서 관련 언급을 최대한 삼가는 ‘로키(low key)’ 전략을 구사 중이다. 황 대표는 25일 6.25 기념식을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지금 정치 상황을 얘기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관련 발언을 회피했다.
황 대표의 이같은 전략에 대해 한국당 핵심관계자는 “위기에 몰린 나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합의안이 부결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황 대표가 ‘협상을 잘못했다’는 메시지를 낼 경우 나 원내대표 리더십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자칫 대표 메시지가 잘못 나가면 당내 분란이 생길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황 대표가 머지않은 시점에 타개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황 대표가 협상력이 떨어진 나 원내대표를 측면에서 지원하면서, 동시에 당내 강경파도 달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한국당의 한 초선의원은 “민주당과의 협상도 중요하지만 당 의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도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차기 사무총장 인선도 이전보다 더 중요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영익ㆍ김준영 기자 hanyi@joogn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