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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의사 한명이···" 정신병동 갈등 키운 안민석 막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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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20일 경기 오산시 세마역 인근 아파트 단지에 정신병원 개설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이승호 기자]

20일 경기 오산시 세마역 인근 아파트 단지에 정신병원 개설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이승호 기자]

20일 오후 경기 오산 세마역 부근 아파트 단지. 노란색 바탕의 플래카드가 아파트 단지 주변에 가득했다. 일부는 아파트 건물에도 걸려 있었다. ‘주민기만 탁상행정! 폐쇄병상 폐쇄하라!’ ‘폐쇄병상 해결촉구! 주민모두 기다린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일대에 플래카드가 걸린 것은 2달이 다 돼 간다. 지난 4월 29일 주민들은 아파트에서 500m 떨어진 상가건물에 병원이 새로 들어선다는 소식을 알았다. 오산시가 이 병원의 개설을 허가한 지 엿새만이다.

주민들은 소아청소년과, 내과,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로 구성된 평안한사랑병원의 총 140개 병상 중 126개 병상이 정신과 폐쇄병동으로 운영된다는 소식에 반발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1인시위, 촛불집회 등을 벌여왔다. 주민 A씨는 “주민 상당수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라며“이들은 정신병원이 어린이집·초등학교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할 거라 걱정한다”고 말했다.

20일 경기 오산시 세마역 인근 아파트 단지에 정신병원 개설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이승호 기자]

20일 경기 오산시 세마역 인근 아파트 단지에 정신병원 개설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이승호 기자]

주민 반대에 지방자치단체가 움직였다. 오산시는 지난달 초 보건복지부에 병원의 설립요건이 적절한지 질의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중순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126개 정신과 병상에 정신과 전문의를 3명 둬야 하지만 1명밖에 없어 허가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를 근거로 오산시는 현재 병원의 허가 취소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한 달 전 병원의 허가를 내준 오산시가 입장을 바꾼 것이다.

병원 측은 반발한다. 이동진 평안한사랑병원 부원장은 “시에서 허가를 내고서는 주민 반발이 강해지자 방침이 바뀐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허가 취소 처분이 내려지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허가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질 문제라는 입장이다. 홍정익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이미 허가를 내줬다면 기본적으로 허가는 존중하되 상황을 개선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고, 그래도 지키지 않을 경우 취소절차를 밟을 수는 있다”며 “하지만 취소 여부는 전적으로 지자체가 결정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오산 세교 신도시 주민 공청회에 참석한 안민석 의원의 모습.[사진 안민석 의원 홈페이지]

지난달 17일 오산 세교 신도시 주민 공청회에 참석한 안민석 의원의 모습.[사진 안민석 의원 홈페이지]

지역구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막말을 쏟으며 병원과 오산시를 압박하고 있다. 안 의원은 지난달 17일 주민들이 개최한 촛불문화제에서 “(병원장이 소송을 한다면) 특별감사를 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 “일개 의사 한 명이 어떻게 대한민국 정부와 오산시를 상대로 이길 수 있겠나” “한 개인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 “삼대에 걸쳐 자기 재산 다 털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상욱 오산시장은 지난달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병원) 허가취소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동진 원장은 20일 “지금 청문 절차가 진행 중으로 오산시에서 취소처분 통보를 하지 않아 정상 영업 중”이라고 말했다. 취소 처분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 허가취소가 됐다고 밝힌 것이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안 의원이 병원장에 막말을 하고 병원 허가 취소 문제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20일 검찰에 안 의원을 고발했다. 안 의원 측은 문제의 핵심은 막말 논란이 아니라 병원의 불법 운영 의혹이라는 입장이다. 안 의원은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막말논란에 대해 “(해당 발언은) 병원 측의 안하무인식 태도와 대처에 대해 분개하여 감정적 토로를 한 것”이라며 “본질은 병원 개설허가가 잘못됐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인력 기준을 위반했음에도 지자체 허가를 받아 병원을 개설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21일 안민석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오산 세교 신도시 정신병원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진 안민석 의원 페이스북 캡처]

21일 안민석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오산 세교 신도시 정신병원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진 안민석 의원 페이스북 캡처]

최근 안인득 사건 등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상황이다. 주민들이 걱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신병원을 무조건 반대하는 게 맞는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1일 성명을 내고 "주민들이 국립서울병원을 이전하라고 요구했지만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국가정신보건사업을 총괄하는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새롭게 단장했다. 광주광역시에 중증정신질환 기관이 여러 곳 설립되었지만, 사고가 증가하기는커녕 광주가 전국에서 가장 낮은 자살률을 보이는 안전한 도시가 되었다"고 밝혔다.

학회는 "정신건강의학과 병·의원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 또는 정신사회재활시설과 같은 치료재활기관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 지역주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은 지나친 기우"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가뜩이나 설 자리가 없는 정신의료기관 설립이 어려워져 정신질환자 관리에 구멍이 뚫릴까 우려한다. 정신과 폐쇄병동은 최근에 수익성이 떨어지며 그 수가 줄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병상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가들은 “오히려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정신질환 환자가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평안한사랑병원은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병원이다. 이제와서 주민 반발을 이유로 허가를 취소한다거나 국회의원이 나서 이를 종용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진정으로 지역을 생각하는 정치인과 지자체장이라면 갈등 당사자를 만나 꾸준히 설득에 나서야 했다. 막말과 성급한 행정조치로 갈등을 더 키워선 안 됐다. 지금이라도 정도를 지켜야 한다.
오산=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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