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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하다] 정부 맘대로 보조금…진안·청송 230억 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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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라북도 진안군과 경상북도 청송군은 여러모로 닮은 지역이다. 군 면적의 80%가 산악지대인 두 곳의 인구는 각각 2만6000명 정도다. 고령 인구 비율이나 재정 여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지난 두 해 동안 이곳 주민들에게 돌아간 국고보조금의 차이는 컸다. 진안군은 1인당 417만원인 데 비해 청송군은 335만원으로 82만원 적었다. 군 전체로 따지면 편차가 약 230억원이었다.

228곳 기초단체 1인당 국고보조금 분석 #고령인구, 재정여건 비슷한데 '천양지차' #전북 진안군, 서울 서초구보다 24배 많아 #신안군, 괴산·합천군과 100만원 차이 #포항시-서울 관악구 3배 이상 편차 #정부가 정하는 국고보조율에 원칙 없어 #지역 실정 맞게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 #

얼마나 큰 금액의 보조사업을 많이 따냈는지가 두 군의 차이를 가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진안군의 국고보조사업은 432건, 청송군은 354건이었다. 5억원이 넘는 보조사업은 진안군 56건, 청송군 35건이었다. 진안군은 지역 명소인 마이산 자연치유 신비체험, 마이산 토털관광 체험센터 구축사업 등에 20억원 넘는 국고보조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6월 초 마이산 인근에서 만난 진안군민과 상인들은 “그런 게 있었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전국 228곳 기초단체별 국고보조금을 보시려면 클릭해주세요. https://www.joongang.co.kr/Digitalspecial/358

전국 228곳 기초단체별 국고보조금을 보시려면 클릭해주세요. https://www.joongang.co.kr/Digitalspecial/358

‘탐사하다 by 중앙일보’가 국고보조금이 전국 기초자치단체(이하 기초단체)에 어떻게 나뉘었는지 분석했다. 기획재정부가 운영하는 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e-나라도움)을 통해 2017~2018년 전국 228곳(제주특별자치도·세종특별자치시 포함) 기초단체에 편성된 국고보조사업 17만3000여 건을 전수조사했다. 기초단체별 국고보조금 내역이 비교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왼쪽부터 진안군청, 청송군청 전경. 김태윤 기자, [청송군청]

왼쪽부터 진안군청, 청송군청 전경. 김태윤 기자, [청송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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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보조금은 말 그대로 중앙정부가 나라 곳간을 열어 재정이 부족한 지방에 보조해 주는 돈이다. 기초연금이나 의료·생계급여, 영유아 보육료는 물론 지역 일자리 사업, 치매안심센터 등에 쓰인다. 요람부터 무덤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최근 5년간 예산만 320조원에 달한다. 올해 예산은 77조8000억원으로 국민 1인당 150만원꼴이다. 정부 전체 예산의 16.6%다.

전수조사했더니 지역별 차이가 컸다. 1인당 국고보조금이 300만원 이상인 곳은 26곳(11.4%), 200만원대는 39곳(17.1%), 100만원대는 47곳(20.6%)이다. 50만원 이하는 52곳(22.8%)이었다. 전체 평균은 74만원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 2년간 주민 한 사람당 국고보조금이 가장 많았던 곳은 전북 진안군으로 나타났다. 1인당 417만원 꼴이다. 다음은 경북 울릉군(404만원), 전남 신안군(398만원), 전북 장수군(397만원), 경북 영양군(388만원) 순이었다. 대체로 인구가 적고, 고령인구가 많으며, 재정이 열악한 곳이다.

1인당 국고보조금이 가장 적은 곳은 서울 서초구로 17만원이었다. 진안군과 24배 차이다. 서울 강남구(20만원), 광진구(25만원) 등 서울 소재 자치구가 대체로 낮았다. 울산시 남구(40만원), 대전시 유성구(43만원), 대구시 달서구(49만원), 부산시 해운대구(51만원) 등 6대 광역시 소재 기초단체도 대부분 전국 평균에 못 미쳤다. 행정 분야 전문가들은 “지역별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알았지만 이렇게 편차가 클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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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보조금의 기능 중 하나는 지역 간 재정 불균형을 줄이는 것이다. 지역 실정에 맞게 정교하게 배분해야 하는 이유다.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교부세와 더불어 지자체의 주요 재원인 국고보조금이 역 형평성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실상은 달랐다. 조건이 비슷한 지자체 간에도 편차는 심했다. 본지가 인구 5만 명 이하, 재정자립도 15% 이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 30% 이상인 지역 19곳을 추려 분석했더니 주민 1인당 국고보조금은 최대 135만원 차이가 났다. 재정·인구·고령인구 상황이 비슷한 전남 신안군(398만원)과 충북 괴산군(294만원)은 100만원 넘게 격차가 있었다.

대도시도 마찬가지다. 경북 포항시와 인천 남동구, 서울 관악구는 모두 인구가 50만 명을 갓 넘는다. 고령인구 비율도 비슷하고 재정자립도 역시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1인당 국고보조금은 포항시가 101만원, 남동구와 관악구는 각각 49만원, 30만원이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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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광역자치단체 내에서도 편차는 심했다. 인천시 서구(42만원)와 옹진군(336만원)은 여덟 배 차이가 났다. 서구는 인천시 동구(83만원)와도 두 배차였다. 서울에서는 재정자립도가 거의 같은 중구(51만원)와 서초구(17만원) 간에 세 배 넘는 편차를 보였다. 경기도에서는 성남시(37만원)가 가장 적었고 연천군(207만원)이 가장 많았다. 안양시(38만원), 과천시(39만원) 등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재정이 부족한 지자체의 ‘국고 보조금 따내기’ 경쟁도 한 이유지만 전문가들은 중앙정부가 모든 권한을 쥐는 ‘일방 행정’이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한다. 국고보조금은 일정 비율을 지자체가 부담한다. 이를 국고보조율이라고 하는데 보조사업에 따라 중앙정부가 0~100%로 차등 지원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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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국고 보조사업을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보조율 역시 지역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와 지자체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재원 부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역별·사업별 보조율 차이에 원칙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승연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행 국고보조율은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기 훨씬 전인 1986년에 정해진 후 큰 개정 없이 운용되고 있다”며 “지역 실정을 반영한 합리적인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탐사보도팀=김태윤·최현주·문현경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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