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한국판 '콘보이쇼' 본고장 일본을 뒤흔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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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6일 저녁 일본 삿포로시의 교육문화회관. 공연장을 가득 메운 1200여 명의 관객들은 땀으로 범벅이 된 7명의 한국 배우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일본에서 20년간 공연된 일본 뮤지컬 '콘보이쇼'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완벽하게 소화해낸 것에 대한 찬사였다. 삿포로 공연으로 한 달 반의 일본 순회공연(12개 도시.총 27회)을 마친 한국판 '콘보이쇼'출연진은 더 이상 무명의 뮤지컬 배우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혼신의 연기로 일본 전역을 감동시키며, '공연 한류(韓流)'의 가능성을 일깨워줬다.

일본 제작사인 콘보이하우스 관계자는 "원작 콘보이쇼의 열정이 해가 거듭할수록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는데, 한국 배우들이 그 열정을 부활시켰다"고 극찬했다. 중간 휴식 없이 탭댄스, 노래, 타악 퍼포먼스, 아크로바틱 등 두 시간을 내달리는 연기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한 마라톤'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지독한 연습으로 무대를 자기들만의 세계로 만들었습니다. 초심자에게 어려운 안무도 그들은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피에 그런 도전정신이 흐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일본의 유명 뮤지컬배우이자 '콘보이쇼'의 원년멤버인 세시모 나오토(41)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것은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다른 작품처럼 느껴졌어요. 무대 위 배우들의 파워가 객석까지 그대로 전달됐어요."(관객 이시다 요코) "배우들의 엄청난 연습량이 그대로 느껴지는 감동적인 무대였어요. 성숙미가 느껴지는 일본 원작과 달리 이번 작품은 젊음의 에너지와 열정이 가득해요."(관객 와타나베 미에코)

하지만 젊음과 열정만으로는 까다로운 일본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는 법. 한국 가요(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와 시('킬리만자로의 표범'.'콩나물의 항변'.'목련의 꿈' 등)로 표출한 한국의 정서는 일본어 자막을 넘어선 울림으로 객석을 숨죽이게 했다. 관객 고바야시 요코는 "배우들이 온몸으로 표현한 한국 시와 노래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인생관이나 삶의 의지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후지TV의 인기 와이드쇼 '도쿠다네'가 한국 배우들의 연습과정과 도쿄 첫 공연을 밀착취재해 방영하는 등 현지 언론도 관심을 보였다. 공연이 거듭될수록 반응도 뜨거워졌다. 오사카 공연(6월 17일) 이후 기립박수를 받기 시작했고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평균 유료 객석점유율은 70%선. 출연진의 낮은 인지도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라는 게 콘보이하우스 측의 설명이다.

공연이 끝난 뒤 1백여 명의 관객이 배우들을 보기 위해 공연장 주변에 진을 치는 등 배우들은 한류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배우들과 함께 일본 전역을 돌며 공연을 보는 골수팬도 30여 명에 달했다. 골수팬 미야우치 도모코는 "처음 볼 때는 그들의 안무에서 일본 멤버들의 모습이 겹쳐졌는데, 이제는 그들만의 무대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엄마가 된 심정으로 배우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다는 팬도 있었다.

원작자 겸 연출자인 이마무라 네즈미는 "오리지널 멤버가 아닌 배우들이 콘보이쇼를 소화해낼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한국의 젊고 열정적인 배우들이 말끔히 날려버렸다"며 "이들의 순수함과 파워가 일본 관객들을 매료시켰다"고 말했다.

출연진의 리더인 조용수씨는 "한국 뮤지컬 배우들이 첫 일본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며 "새로운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또 다른 감동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르면 내년 초 다시 한국 관객들을 찾는다.

삿포로(일본)=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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