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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서 CIA요원 신분 누설 의혹 확산…부시에도 불똥 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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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 백악관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누설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오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CIA 요청을 받은 법무부가 28일 수사에 착수했고 의회도 특별검사 임명을 요구하고 있어 앞으로 자칫 관련자 사법처리는 물론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타격이 이어질 수도 있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참모가 누설한 것으로 밝혀지면 그를 해고할 것"이라고 미리 차단벽을 쳤다.

◇사건 경위=사건은 지난 7월 14일 정치평론가인 로버트 노박이 워싱턴 포스트 칼럼을 통해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용 우라늄 구입 시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 조셉 윌슨의 부인은 사실은 대량 살상무기 문제를 다루는 CIA 요원'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1991년 걸프전 때 이라크 대사를 역임한 윌슨은 지난해 2월 아프리카 니제르에 파견돼 이라크의 우라늄 구입 의혹을 직접 조사한 뒤 미 정부에 '근거없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 직전 연두회견에서 이를 사실처럼 언급하고 실제로 이라크 침공까지 이뤄지자 그는 7월 초 자신의 조사 사실을 폭로하며 "부시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이라크의 전쟁 위협을 과장했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노박은 칼럼에서 행정부 소식통 2명의 말을 인용해 윌슨을 조사담당자로 추천한 사람이 CIA 요원인 부인이었다고 주장했고, 이후 미국 사회는 '도대체 누가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비밀인 CIA 요원의 신분을 언론에 공개했느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윌슨의 주장으로 타격을 받은 백악관이 '윌슨이 부인과 무슨 공모를 했거나, 또는 부인까지 CIA 요원인 사람이 이러한 돌출.배신 행위를 했다'는 식으로 비치도록 CIA 요원 신분 노출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윌슨은 이와 관련, 지난 8월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가족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위한 보복 또는 경고의 의미로 누군가가 기밀사항을 언론에 흘렸으며, 이 과정에는 백악관의 정치고문인 칼 로브가 간여했을 수 있다"고 맞섰다.

이어 워싱턴 포스트가 최근 "백악관 관리 2명이 다른 기자 6명에게도 윌슨은 못 믿을 사람이라고 비난하면서 이런 사실을 흘린 바 있다"고 보도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특별검사 요구도 등장=의회는 진상을 밝혀야 한다며 특별검사 임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민주당은 부시의 재선 전략을 관장하고 있는 칼 로브 고문이 표적으로 떠오르자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도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 논란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돼 자살한 영국 켈리 박사의 사례를 들어가며 '미국판 켈리 사건'으로 연일 톱기사로 다루고 있어 파문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과 CIA의 갈등설과 함께 신분 폭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기사를 게재한 언론의 책임론도 떠오르고 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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