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규제 차익거래와 ‘한국 탈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 차장

하현옥 금융팀 차장

‘김치 프리미엄’은 암호화폐가 외국 시장보다 한국 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되는 것을 뜻한다. 암호화폐 광풍이 몰아치던 지난해 1월에는 김치 프리미엄이 40~60% 치솟았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값이 싼 해외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사들여 한국에서 비싸게 파는 거래가 성행했다. 가격 차에 따른 이익을 겨냥한 차익거래(Arbitrage)다.

또 다른 형태의 차익거래 온상이 있다. ‘조세 피난처(tax haven)’다. 법인이나 개인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국가나 지역으로, 룩셈부르크나 케이맨 제도·버뮤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조세 피난처는 국가별 법과 제도의 차이를 공략한다. 이른바 ‘규제 차익거래’다.

규제 차익거래는 어떤 거래가 특정 국가에서 금지되거나 원치 않는 방식의 규제와 과세가 적용될 경우 해당 국가를 피해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규제에 더 유익한 거래나 국가를 선택해 규제 제약을 회피하려는 것을 뜻한다.

최근 국내 기업과 자산가가 규제 차익거래에 나선 듯한 모양새다. 자산가 대상의 해외 투자와 이민 설명회는 문전성시다. ‘증여·상속세 피난처’를 찾아 한국을 떠나려는 것이다. 기업의 행보도 우려스럽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 규모는 2014년 359억 달러에서 지난해 592억 달러로 급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높은 규제 부담 등으로 기업이 한국을 탈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려워진 기업 환경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규제 차익거래의 매력을 더 북돋우는 셈이다. 자본의 이탈은 성장의 자양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에 닥친 또 다른 시련이다. 필요한 건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이다. 비난만으로 규제 차익거래를 막을 수는 없다.

하현옥 금융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