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검인가, 공안수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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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등포 을구 재야 측 출마예정자의 선거사무실이 검문 당하고 선거관계서류가 일시 압수된 사건은 여러모로 의문점과 불쾌한 여운을 남기고 있어 명쾌한 진상규명이 요구되고 있다.
이 사건은 경찰 측과 고영구 변호사 측 주장이 사소한 부분부터 크게 엇갈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사후증언에 따르면 여관에 있을 법한 통상적인 검문과는 양상이 판이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경찰은 왜 이런 검문을 했으며, 영장도 없이 서류는 왜 압수했다가 되돌려 준 것인가. 또 동원된 차량 중에는 안기부소속 차량이 있었고 현장에 안기부 직원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는데 그렇다면 사전에 경찰과 안기부간에 계획된 검문 검색이었던가.
이밖에도 여러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흔적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컨대 문제는 당국이 무슨 의도로 이런 일을 벌였는가 하는 점이다.
경찰이 여관을 검문하거나 수상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여관에 모여 있음을 알고 조사를 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있을 수 있고, 또 경찰로서는 꼭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일은 통상적인 업무수행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는 데다 그 대상이 재야 측 출마 예정자였다는 점에서 재선거에 영향을 줄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남긴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진상이 나오기도 전에 예단을 하러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국이 명쾌하게 진상을 밝히고 전후곡직을 제대로 설명해야 공권력에 의한 선거개입이란 불신을 피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불행히도 이 사건이 재야세력의 국회진출을 억제하겠다는 정부 또는 공안당국의 의도에서 나왔다면 문제는 단순치 않다.
우선 상대가 누구든 유권자의 지지에 의하는 것이 아닌 방법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발상이 있었다면 이는 시대착오도 이만저만한 시대착오적인 일이 아니다.
과거 50년대 경찰의 선거개입을 연상시키는 그런 해괴한 일이 30년이나 지난 오늘에 다시 나타났으리라고는 결코 믿고 싶지도 않다. 더욱이 상대가 재야 측 후보라면 검문의 필요가 있었더라도 탄압이란 말 자체가 나오지 않도록 더 세심한 배려가 있었어야 마땅했다.
우리는 앞으로 있을 각종 선거에 재야 대표들이 참가하는 것이 바람직 할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원칙에 부합된다고 믿고 있다.
요즘 공안정국으로 드러나고 있듯이 재야세력 안에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심지어 서경원 사건 같은 것도 있었지만 걸핏하면 가 투와 같은 격렬한 방식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소외세력을 대변해 줄 정치세력의 제도권 진인이 있어야 사회안정이 가능하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만약 고영구 변호사를 재야가 단일 후보로 내세워 출마케 하려는 움직임을 정부가 억제하려 한다는 인상을 조금이라도 풍긴다면 재야세력 안에 존재하고 있는 온건파의 입지는 좁혀지고 재야 강경파의 발언권이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결과는 정부 여당은 물론3야당에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번 사건의 의미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고, 관계당국은 이 사건이 불러 일으킨 의문을 명확히 해명하고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책임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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