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거하는 김정일 … 최대 관심사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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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동 2호 미사일이 불을 뿜은 지 나흘이 지난 9일 오후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김일성 사망 12주기를 맞은 8일에도 김 위원장은 칩거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7월 8일 새벽에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을 찾던 그였다. 하지만 올해는 당.정.군의 핵심 간부들만 얼굴을 보였다.

미사일 발사 준비를 시작한 5월 초 이후 34차례나 공개활동을 보도해 온 북한 언론도 더 이상 김 위원장의 활동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발사 하루 전인 4일 관영 중앙통신이 김 위원장의 평양 대성타이어공장 현지지도를 보도한 게 마지막이다. 중앙방송을 통해 9일 "일찍이 장군님(김 위원장)은 철천지 원수 미제 침략자들에게는 자그마한 양보도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는 보도를 내보내 주민들의 대미 결사항전 의지를 북돋우는 수준이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이 대포동 2호 발사 사태 이후의 대응방안을 놓고 장고(長考)에 들어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일본의 대북 제재 움직임 등 국제 정세의 흐름을 살피며 전략을 짜고 있다는 얘기다. 6자회담에 대한 한.미.일의 분위기나 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 등은 김 위원장에게 초미의 관심사일 게 분명하다.

특히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에 묶인 2400만 달러(230억원)의 자금에도 각별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자신의 통치자금과 가족.측근들의 돈줄이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미사일 발사 직후 한성렬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마카오 계좌 동결 해제를 언급한 점을 의미 있게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측으로서는 '최고지도자의 돈줄에 손을 댄 것은 체제의 자존심과 관련한 문제'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칩거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신변 위해를 우려한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또 대포동 2호 실패에 따라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98년 8월 대포동 1호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망신을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첫 시도였던 데다 '인공위성 궤도 진입 성공'을 주장할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엔 세계가 보는 앞에서 참담한 실패를 했다. 김 위원장이 나설 분위기가 아니란 판단을 북한 지도부가 내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우리 정부 안에서는 북한 권력 내부에서 대포동 2호 발사 실패에 대한 대대적인 문책이 따를 것이란 분석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과 스커드 미사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쏜 것이 대포동 2호 미사일의 실패시에 대비한 것이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이 대목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그렇지만 문책에 부담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군부가 주도한 미사일 개발과 발사에 대해 제동을 걸 경우 자칫 김 위원장의 리더십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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