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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내전 중인 리비아에 66만 아프리카 이주민이 몰려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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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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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6일 리비아 남서부 자발 하사우나에서 무장 괴한에 납치됐던 한국인 기술자 주모(62)씨가 지난달 16일 피랍 315일 만에 풀려나 귀국했다. 주씨는 리비아 대수로 관리청과 한국 CJ대한통운의 합작사인 수로관리회사 ANC의 직원으로 필리핀인 3명과 함께 납치됐다.
자발 하사우나는 1990~96년 건설된 1730㎞ 길이의 리비아 2단계 대수로의 남쪽 끝으로, 취수장이 있다. 대수로는 사하라 사막의 지하수를 지중해 연안 인구밀집 지역으로 옮기는 인공 수로다. 리비아는 도대체 어떤 상황이기에 자국에 물을 공급하는 외국인 기술자까지 납치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지난 2일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다 리비아 서부 트리폴리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선박에서 구조된 이주민 어린이가 저체온증 방지를 위해 알루미늄 호일로 감싼 담요를 덮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일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다 리비아 서부 트리폴리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선박에서 구조된 이주민 어린이가 저체온증 방지를 위해 알루미늄 호일로 감싼 담요를 덮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피랍 한국인 구출된 리비아 혼란 #7000명 이상 숨진 피의 내란 중 #리비아 남쪽 아프리카 국가에선 #분쟁·테러·기아·가난 이주자 양산 #올해 들어 지중해 도항 1만7000명 #바다 건너려다 494명 사망·실종 #구조돼 구금돼도 인권상황 열악 #IOM 등 국제기구 나서 개선 노력

리비아는 현재 내전 중이다. 2011년 민중봉기로 무아마르 카다피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1차 내전에 이어 2014년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2차 내전이 발발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차 내란은 첫 의회선거에 불복한 서부 트리폴리 기반의 이슬람주의자들과 당시 승리했던 동부 토브룩 중심의 세속주의자들이 맞서고 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리비아 옵서버 등 국제기구와 민간단체들은 지금까지 7000명 이상이 숨지고 2만 명이 이상이 부상한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 4월 초 리비아 서부 트리폴리로 진격하는 동부 리비아국민군(LNA)의 병사들. 2014년 발발해 7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계속되는 리비아 2차 내전의 한 부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초 리비아 서부 트리폴리로 진격하는 동부 리비아국민군(LNA)의 병사들. 2014년 발발해 7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계속되는 리비아 2차 내전의 한 부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리비아는 책임 있는 정파나 세력이 없는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다. 이 나라는 크게 서부 트리폴리타니아, 동부 키레나이카, 남부 사막의 페잔 등 세 지역으로 나뉘고, 이는 다시 270여 개의 부족으로 분할된다. 현재 전국에 1700여 무장 정파가 할거한다. 혼란을 틈타 알카에다·이슬람국가(IS) 등 외부의 극단주의 무장조직이 활개 치면서 이슬람 시아파 외국인 노동자를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러왔지만,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지난 2일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던 배가 리비아 서부 트리폴리 인근 해상에서 사고로 침몰하면서 간신히 구조된 이주민 여성이 숨진 아이를 안고 통곡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일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던 배가 리비아 서부 트리폴리 인근 해상에서 사고로 침몰하면서 간신히 구조된 이주민 여성이 숨진 아이를 안고 통곡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특히 지난 4월 동부와 남부를 장악한 세속주의 군벌 리비아 국민군(LNA)이 서부 트리폴리로 진격하면서 새로운 전투가 발생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4월 이후 300명 이상이 숨지고 3000명 이상이 부상했다. 국내외 이주문제를 담당하는 유엔 기관인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트리폴리 교전으로 지금까지 6만6000명 이상의 리비아인이 강제 이주됐다.
이런 혼란의 리비아에 아이로니컬하게도 주로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 옮겨온 66만 이상의 외국계 이주자가 머물고 있다. 이들은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로 밀항하는 중간 기착지로 리비아를 선택했다. 대부분 내란·테러·쿠데타·기아·경제난 등으로 살기가 어려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에서 온 이주자들이다.

 지난 2일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던 배가 리비아 서부 트리폴리 인근 해상에서 사고로 침몰하면서 구조된 이주민들이 인근 항구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들은 리비아 내 구금시설로 옮겨지게 된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일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던 배가 리비아 서부 트리폴리 인근 해상에서 사고로 침몰하면서 구조된 이주민들이 인근 항구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들은 리비아 내 구금시설로 옮겨지게 된다. 로이터=연합뉴스]

리비아와 남쪽 국경을 맞댄 니제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510달러, 차드는 890달러의 세계 최빈국이다. 니제르와 이어지는 말리에선 2012년 소수민족 반란과 군사쿠데타에 이어 민족해방세력과 이슬람주의자, 그리고 알카에다 마그레브 지부가 합류하면서 복잡하고 험악한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인근 부르키나파소에서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최근 프랑스 특수부대가 구출한 프랑스인·한국인·미국인도 이들에 의해 납치됐다.
니제르 남쪽 나이지리아에선 2009년 북서부 지역에서 샤리아(이슬람법)의 시행을 주장하는 무장조직인 보코 하람이 테러활동을 벌이면서 5만 명 이상이 숨지고 240만 명 이상이 삶의 터전을 잃고 국내 난민이 됐다. 차드 동쪽의 남수단은 2011년 독립했지만 2013년부터 내란과 기아가 겹쳐 재앙적 상황을 겪고 있다. 이태석 신부가 활동하던 이곳은 2013년 대한민국 남수단 재건지원단(한빛부대)이 파병돼 있다.
이런 혼란과 생활고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주민들이 리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새로운 거처를 찾아 나서는 핵심 동기다. IOM에 따르면 이렇게 리비아에 몰린 아프리카 이주자들은 올해 들어서만 1만7000명이 유럽행을 시도했으며, 이 중 494명이 해상에서 사망·실종했다.
이런 상황에서 리비아에 머무는 이주자들의 인권 상황을 우려하는 보고와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BBC와 CNN에 따르면 리비아에선 이주자 대상 노예 시장도 성행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도항에 나섰다가 바다에서 잡히거나, 난파 뒤 구조돼 리비아 구금 시설에 갇힌 사람들의 열악한 상황이다. IOM 리비아 사무소의 사파 음셀리 공보관은 “지중해를 건너다 선박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도 안타깝지만 구조 뒤 리비아 구금시설에 들어간 이주자들의 열악한 인권 상황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에는 지중해에서 조난한 이주자들을 구조한 몰타 선박이 리비아 트리폴리로 향하자 이주자들이 리비아행을 거부하고 배를 장악하는 바람에 몰타 해군이 출동하는 어이없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IOM 한국 사무소의 김주미 공보담당관은 “리비아 구금 시설에 수용되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생각에서 벌인 극단적인 행동으로 풀이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리바아에서 작은 고무 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는 아프리카 이주자들.[사진 IOM]

리바아에서 작은 고무 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는 아프리카 이주자들.[사진 IOM]

여기에 더해 유럽에선 난민을 거부하는 극우 세력이 확산해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선 프랑스·이탈리아·폴란드에서 반이민을 기치로 내건 정당이 제1당을 차지했다. 이주자 문제는 이제 유럽 정치도 뒤흔들 정도가 됐다. “이주자 유입을 막아야 한다”는 유럽과 “이주의 원인이 되는 아프리카의 분쟁과 가난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는 가운데 오늘도 난민들은 전란의 리비아를 통과해 지중해에 배를 띄우고 있다. IOM 리비아 사무소의 사파 공보관은 3일 밤에도 IOM 한국 사무소와 연락하며 정보를 공유하던 중 “이주자들이 탄 배가 난파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며 황급히 현장으로 떠났다. 이 비극은 언제나 멈출 것인가.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리비아는 어떤 나라>
위치: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과 사하라 사막
면적: 175만9541㎢로(한반도의 8배, 세계 16위)
인구: 720만(2018년 CIA 팩트북 추정치)
인구 구성: 민족 97% 아랍베르베르인/언어 아랍어/종교 무슬림 97%(대부분 수니파)
체제: 3개의 정부로 분열, 사실상 무정부 상태
경제: 2018년 IMF 명목금액 기준
    GDP 4만3587달러(세계 86위)
1인당 GDP    6692달러(세계 84위)
원유매장량: 743억 배럴(세계 8위, 석유수출국기구(OPEC) 통계)
원유생산량: 일일 100만 배럴(세계 20위, 2017년 미 에너지관리청(EIA) 통계)

<리비아 이주자 실태> 
거류 이주자: 66만 명(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이하 국제이주기구(IOM) 통계)
2019년 지금까지 1만7000명 유럽 도항 시도, 494명 해상에서 사망·실종

<독립 뒤 리비아가 걸어온 길>  
1947년 이탈리아에서 독립
1969년 무아마르 카다피, 군사쿠데타로 왕정 무너뜨리고 집권
2011년 민중혁명으로 리비아 1차내전/카다피 피살 뒤 국가과도위원회(NTC) 구성
2012년 제헌의회인 국민회의(GNC) 구성
2014년 첫 총선 패배 이슬람파, 선거무효화/세속파, 의회 토브룩 이전/리비아 2차내전
2015년 토브룩 정부, 리비아 국민군(LNA) 거느린 군벌 하프타르를 군 사령관 임명
2015년 유엔 중재로 통합정부(GNA) 구성 합의
2016년 통합정부 구성했으나 토브룩 정부는 참여 거부
2019년 LNA, 통합정부 근거지인 서부 트리폴리를 향해 진격하며 유혈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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