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일 관계 고심 미국도 괴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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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은 자민당 참패를 가져온 최근의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자민당의 패배와 우노 수상의 사임은 일본에 대한 미국의 외교·경제 정책에 문제를 야기할지도 모른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번 일본 선거와 관련해 미국 국무성의 마거릿 터드와일러 대변인은 『미국은 양국간의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계속 긴밀하게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논평했다.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미일 협력 자세가 유지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백악관의 피츠워터 대변인은 『부시 행정부는 일본 선거 결과에 대해 공식 논평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내정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그 동안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선거 결과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평해 왔다. 피츠워터 대변인의 논평 자제가 오히려 이례적이다.
이 같은 전에 없던 자세는 선거에 대한 미의 당혹감의 표시로 풀이된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지는 이를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최대 정치적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몇 년 이래의 집권당 자민당이 비록 참의원이지만 의석의 거의 4분의 1을 상실하고, 수상이 타월을 던지고 링에서 내려왔는데도 다음 지도자의 윤곽이 보이지 않는 정치적 혼미는 미국의 대일 관계에 있어서 처음 보는 상황인 것이다.
미국도 다케시타 전 수상의 부패 문제, 우노 수상의 여자 문제, 세제 개혁 등으로 자민당이 고전하리라는 일반적 예상은 했어도 이같이 집권당이 처참한 패배를 당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성 관계자들은 그 원인을 분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반응이다. 일 시장 개방, 특히 쇠고기·귤·쌀 등 농산물 수입 개방을 요구한 미국의 노골적 압력과 이에 대한 일 정부의 양보 등에 대해 일 유권자들이 격분한 것도 한가지 선거 결과의 요인이 아니냐는 풀이도 미국 쪽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작 일본에서는 이점이 거론되지 않는데 미 측에서 얘기되는 것 자체가 흥미롭지만 피츠워터 대변인은 이와 관련,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일본 정부이건, 다른 정부이건 미 이익을 위해 계속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국은 다른 어느 때보다 일본의 「강한 정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일본의 협력 내지 보다 많은 양보가 요청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민당의 후퇴는 일 정부의 약화를 의미하며 이 경우 일본은 대미 관계에 있어 행동의 신축성을 크게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 행정부가 겉으로는 선거 결과에 괘념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일 선거는 미국으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인게 분명하다. 상무성의 마이클 패런 차관은 『주요 문제들에 관한 그간의 진전을 더 이상 기대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대일 통상 관계의 장래를 걱정했다.
고질적 무역 적자의 해결을 대미 최대 흑자국인 일본에서 찾아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이번 자민당 의석 상실이 농촌지역에서 다수 발생한 사실을 주시하고 있다. 미 농산물의 대일 수출 시장 개방에 더 높은 벽이 세워지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미국이 대일 협조를 모색하는 것은 통상 문제뿐만이 아니다. 필리핀에 대한 경제 원조도 주도는 미국이 하지만 원조 규모는 일본이 미국을 능가한다. 최근 대 중국 관계의 소원 상황과 관련, 미국은 일본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고 특히 제한적인 대중 경제 제재의 추진을 위해 일본을 비롯한 우방의 공동 보조를 몰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방위비 분담 증가 요구는 미국의 계속적 추진 사항이며 국제 분쟁 지역에 일본의 자위대를 감시 역할을 위해 파병하는 문제까지 협의를 하는 정도로 미국의 대일 외교 협조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자민당의 후퇴, 특히 사회당의 대거 진출은 미국으로서 곤혹스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회당은 48년이래 줄곧 미일 안보조약의 폐기를 주장해 왔다.
도이 사회당 위원장은 선거 후 이 문제에 관한 견해를 표명하면서 일단 공격적 자세를 유보했다. 4개년 계획으로 일본의 대미 안보관계의 단계적 해체를 협상하겠다는 유연성을 나타냈다.
일본의 시장 폐쇄 등 못마땅한 요소들에 조급한 반응을 보이는 강경론자 중에서는 일본의 정치적 변화가 없는 한 현안 해결을 위한 변화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자민당 패배를 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감한 현안 해결을 위해 일본의 양보 폭이 감소 돼서는 안되고 이를 위해서는 자민당의 좌절이 더 이상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게 미국의 일반론이다.
초점은 중의원 선거에 모아져 있다. 임기 만료는 내년 7월이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해산에 이어 실시될 중의원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참의원 선거에서 나타낸 「시위」를 반복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집권당의 후퇴를 몰고 온 이번 참의원 선거 결과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가 생각보다 훨씬 적은 충격을 받고 평정을 유지하는데 한편으로는 의아해 하고 한쪽으로는 안도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중의원 선거에서도 보수 패배가 재연되면 미일 관계는 양상 변화의 진폭이 커질 것이라고 미국은 전망하고 있다. <워싱턴=한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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