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 임대인(소유주)과 월세로 위탁관리를 체결한 뒤 임차인과는 전세 계약을 맺고 차액 수백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구속됐다.
천안서북경찰서는 오피스텔 전세보증금 수백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관리업체 대표 이모(39)씨와 직원 김모(40)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21일 밝혔다. 다른 직원 3~4명은 같은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임차인 전세보증금 받아 프랜차이즈 투자 #사업실패 자금 바닥나자 전·월세 돌려막기 #고소당하자 “갚겠다”며 해명한 뒤 잠적해 #경찰, 2명 구속하고 업체 직원 추가수사 중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2013년 ‘OO’이라는 오피스텔 분양 및 위탁관리업체를 차린 뒤 임대인들과 월세 임대업무를 위임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오피스텔 1세대당 보증금 일부와 월세를 받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씨는 임차인들과 월세 계약을 하지 않고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전세보증금은 1세대당 3000만~9000만원을 받았다, 이런 방식으로 이씨 등은 올 3월까지 6년 7개월간 충남 천안과 부산, 경남 창원, 경기 수원, 경북 구미 등에서 오피스텔 1400여 세대를 위탁 관리했다. 이들이 전세계약으로 받은 보증금만 400억~500억원에 달했다.
이렇게 빼돌린 돈으로 이씨는 음식점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경기불황과 음식점 운영 미숙 등이 겹쳐 사업에 실패하면서 40억~50억원가량의 손실을 봤다.
월세를 납부할 시기가 돌아오자 이씨는 임차인에게서 받은 전세보증금 중 일부를 임대인들에게 월세로 보냈다. 이른바 ‘돌려막기’다. 하지만 임대 기간이 끝난 임차인에게 수천만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자금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이씨가 가로챈 전세보증금 지급 의무는 임대인에게 떠넘겨졌다. 이 같은 그의 범행이 드러나면서 지난 3월 일부 임대인은 사기 혐의로 이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씨는 지난 4월 천안의 한 호텔에서 임차인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고 “자산을 매각해 6월 말까지 갚겠다”고 해명했다. 임차인들에게 사기가 아니라는 점도 호소했다. 하지만 이씨는 돈을 갚지 않고 잠적했다. 경찰은 추적 끝에 지난 14일 인천의 한 숙박업소에 숨어있던 이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1300~140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 1000여명, 오피스텔 위탁관리를 맡긴 임대인 300~400여명 정도다. 피해자는 천안이 700명으로 가장 많다. 이씨가 운영했던 업체는 미등록 업체로 확인됐다.
피해자 대부분은 박봉을 모아 전세보증금을 마련한 회사원들로 확인됐다. 일부는 돈을 모으기 위해 1~2년 정도 지방에서 근무하다 피해를 보기도 했다. 임대인 가운데는 노후를 위해 퇴직금이나 연금을 모아 오피스텔 여러 세대를 마련한 뒤 위탁계약을 체결해 피해를 봤다.
경찰 관계자는 “고소를 접수하고 수사를 진행하면서 피해자가 많은 것을 알았다”며“오피스텔 등을 계약할 때 임차인은 전세권 설정등기나 확정일자를 받는 등 피해예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안=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