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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도깨비야시장’ 서울의 명물로 만든 이 사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상원의 소소리더십(45)

몇 해 전부터 심심찮게 입소문을 타더니 이제는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손꼽히는 곳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여의도한강공원, 반포한강공원, DDP, 청계천, 청계광장, 상암 문화비축기지 등의 주말 밤을 밝히는 ‘서울 밤도깨비야시장’이 그곳이다. 입맛 돋우는 푸드트럭과 눈길 끄는 수공예품 노점, 그리고 다양한 문화공연이 입, 눈, 귀를 즐겁게 한다.

밤마실 나온 사람들의 입소문을 만들어 내는 비결은 따로 있다. 군데군데 자리 잡고 방문객을 도와주는 운영 요원들 덕분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데도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지저분하지 않다.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해봤다면 다른 행사와의 차별성을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밤도깨비야시장을 공동기획하고 운영하는 ‘컬처웨이(Culture Way)’의 이성환(46) 대표에게 그 비결과 뒷얘기를 들어봤다.

서울의 대표 문화상품으로 떠오른 '밤도깨비야시장'을 운영하는 문화예술기획그룹 '컬처웨이'의 이성환 대표. [사진 이성환]

서울의 대표 문화상품으로 떠오른 '밤도깨비야시장'을 운영하는 문화예술기획그룹 '컬처웨이'의 이성환 대표. [사진 이성환]

밤도깨비야시장을 기획한 계기는 무엇인가?
시민과 관광객들이 먹고, 사고, 즐기는 등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처음부터 우리 회사가 기획한 것은 아니에요. 2015년 서울시가 주최하고 여러 회사가 공동으로 기획한 시범사업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참가했죠.

이듬해까지 협력해 일하다가 2017년 본격적으로 합류해 연간사업으로 진행하게 된 겁니다. 2016년 화제가 됐던 여의도 밤도깨비야시장이 출발점이었죠. 2017년 반포, DDP, 동대문, 청계, 상암 등지로 확장했어요. 이제는 ‘외국인들이 뽑은 서울시 정책 1위’로 선정될 만큼 서울의 명소로 자리 잡았으니 뿌듯합니다.

야시장 운영매뉴얼이 두꺼운 책 한권

예전부터 전국적으로 비슷한 장터는 많이 있었는데, 밤도깨비야시장이 특별히 성공한 비결은?
일단 주말에 열리는 야시장이라는 기획컨셉이 독특했죠. 음식, 쇼핑, 공연이 어우러지니까 데이트나 가족 단위 마실에 적합했고요. 무엇보다 운영에 특히 신경 쓴 것이 주효했습니다. 저희 운영매뉴얼이 두꺼운 책 한 권이에요. 음식물 쓰레기 처리, 안내, 가격 등 불편을 없애기 위해 무척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밤도깨비야시장 하면 푸드트럭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많은 사람이 야외에서 식사하는데 이렇게 깨끗할 수 있나 깜짝 놀라죠. 곳곳에서 유니폼 입고 돌아다니는 직원들을 쉽게 보실 수 있어요. 가장 신경 쓰는 점입니다.

봄부터 가을 주말 밤 여의도(위), 반포(아래) 한강공원 등에 열리는 '밤도깨비야시장'. [사진 컬처웨이]

봄부터 가을 주말 밤 여의도(위), 반포(아래) 한강공원 등에 열리는 '밤도깨비야시장'. [사진 컬처웨이]

‘컬처웨이’는 어떤 회사인가?
문화와 예술을 통해 삶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2014년에 설립한 젊은 기업입니다. 공연, 축제, 콘텐츠, 행사 등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크리에이티브 그룹이죠. ‘예술과 문화의 가치를 달까지!(Arts & Culture Worth Spreading to the Moon!)’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 걸고 있습니다. 밤도깨비야시장 외에 다양한 서울시 축제, 인천국제공항 아트 포트, 용인버스킨 등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20년 가까이 문화계에서 일했습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첫 직장으로 기술 관련 연구원에서 해외영업을 1년 반 정도 했어요. 나름대로 성과도 좋았고 재미도 있었는데 저와는 무관한 회사 내 정치에 지쳐 사표를 냈죠. 이후 친구와 함께 공연 배급 관련된 일을 하다가 2003년에 회사를 공동창업하고 공연 배급, 공연 및 축제 기획 등의 일을 했습니다. 이때 모 백화점의 공연 배급과 하이서울 페스티벌 등을 기획하면서 회사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지요.
잘 운영하던 회사를 나와 다시 창업하게 된 계기는?
그해 봄 세월호 사고 이후 한동안 일이 없었어요. 온 나라가 공연, 축제 등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잖아요.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잠깐 정리를 좀 하고 싶어졌죠. 회사를 그만두고 3개월 동안 도서관에서 인문 서적만 읽었어요. 어릴 때 읽었던 책들인데 다르게 느껴지더군요. 어느 순간 문득 저 스스로 중심을 잡지 않으면 똑바로 설 수 없겠다 싶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바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것인가?
아니에요. 회사를 설립한 것은 2014년이지만 일은 다음 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파티부터 만들었어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아우디 파티’의 시작입니다.
다소 어려운 방황기를 거친 듯한데 생뚱맞게 웬 파티인가. ‘아우디’는 무슨 뜻인지?
사람들을 모으고 싶었어요. 문화계 일을 해 왔으니까 주위에 문화계 출신이 많았지만 다른 계통의 사람도 모아서 신나게 놀고 싶었죠. 연결된 고리 모양의 외국 자동차 심볼에서 힌트를 얻기도 했지만 ‘아싸! 우리 디비지게(아우디) 놀아보자’ 뜻을 담은 것이죠.

얼마 전 21번째 파티를 열었는데, 두 달에 한 번씩 모여 짧은 강연, 공연과 함께 마음껏 놀고 있어요. 1인당 4990원의 참가비를 받기는 하지만 매번 제 사비가 100만원 이상 들어갑니다. 2차 뒤풀이 비용까지 제가 다 부담을 하거든요. 대신 강연, 공연에 초대되어 오는 분들도 무료로 해 주십니다. 일을 떠나 순수하게 놀자고 모이는 거죠.

'아싸! 우리 디비지게 놀아보자!'는 '아우디 파티' 모습. [사진 컬처웨이]

'아싸! 우리 디비지게 놀아보자!'는 '아우디 파티' 모습. [사진 컬처웨이]

언제부터 문화사업에 관심이 생겼나?
대학 때 풍물패를 만들어 정말 열심히 장구, 꽹과리를 쳤어요.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거리에서 장구를 쳐 용돈을 벌기도 했죠. 한때는 영국에서 사물놀이 강습소를 운영해 볼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영국 LIPA(Liverpool Institute of Performing Arts)로 유학을 가서 예술경영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부모님 반대로 포기했죠.
부모님은 왜 반대했나?
여러 이유를 대셨지만 나중에 제가 문화사업 일을 오래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그때 여력이 없어서 유학을 못 보냈는데 제가 이렇게 문화사업을 좋아하고 오래 할 줄 알았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보낼 걸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제가 그랬어요. 처음에는 아쉬운 적도 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유학 다녀왔으면 오히려 잘 안 됐을 것 같다고요.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게 열심히 못 했을 거라고. 이만큼이라도 된 건 결핍이 준 선물이니까 그런 말 마시라고요. 어머니 달래드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솔직한 생각이었어요.

지금의 성과에 만족하는지?
새로운 계획도 많이 세우고 있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잘해 왔다고 생각해요. 20년 가까이 문화콘텐트 사업에 몸담으면서 공연 배급이라는 길도 개척했고요, 힘들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맛도 느꼈고요. 일도 일이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남았다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첫 직장에서 같이 고생했던 동료가 지금 회사의 본부장으로 함께 하고 있고요, 초기에 공연하던 팀들도 여전히 함께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이성환 대표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해 준 '버닝 맨'이 열리는 사막 모습. [사진 이성환]

이성환 대표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해 준 '버닝 맨'이 열리는 사막 모습. [사진 이성환]

무인도 페스티벌 기획 중

마지막으로, 새로운 계획에 대해 소개한다면?
2017년 버닝 맨 페스티벌(1986년부터 매년 8월 미국 네바다 주 사막 한가운데 일시적으로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도시, ‘블랙록 시티’에서 개최되는 예술축제. 마지막에 축제를 상징하는 거대한 나무인형을 불태우는 데서 이름이 유래함)에 다녀오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사막 한가운데에 이 많은 사람이 왜, 어떤 가치를 좇아 오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되새겼습니다.

이미 우리 회사가 여수에서 시작한 적이 있는 ‘빅게임(많은 사람의 물리적 상호작용과 함께 도시나 공공장소에서 개최되고 디지털기기가 활용되는 게임)’ 같은 사용자 경험 기반의 게임 콘텐츠를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축제로, 무인도 같은 독특한 생존환경에서 여행, 문화, 축제 등이 어우러지는 무인도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고 새로운 경험 만들어 드릴게요, 기대해 주십시오.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동료들과 새로운 축제 '무인도페스티벌'을 준비 중인 컬처웨이. [사진 컬처웨이]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동료들과 새로운 축제 '무인도페스티벌'을 준비 중인 컬처웨이. [사진 컬처웨이]

이상원 중앙일보 사업개발팀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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