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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은 제2 인생" 서퍼 전용식당 연 국내 서핑 1세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상원의 소소리더십(44)

과거 외국 해변에서만 볼 수 있던 서핑 타는 모습을 요즘은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강원도 양양의 38선휴게소와 죽도 해수욕장 근처 해변도로를 달릴 때 서핑보드에 올라 밀려오는 파도를 타는 서퍼들의 모습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고는 한다.

서핑 인구 3년 만에 5배 늘어

10년 전만 해도 부산, 제주 등에서 동호인 몇 명끼리 즐기던 서핑 인구가 2014년 약 4만 명에서 2017년 약 20만 명으로 5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전국 5개 지역에서 8개 서핑대회와 비치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또, 서핑이 2020년 도쿄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선정되는 등 국내외 서핑문화와 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다.

마침 우연한 기회에 일찌감치 서핑에 반해 직업도 바꾸고 고향을 떠나 제주도에 정착했다는 이를 소개받았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듀크서프비스트로’의 양진성(40) 대표를 만나 서핑에 대한 궁금증도 풀고 서핑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그의 인생스토리도 들어봤다.

호주 유학 중 우연히 접한 서핑에 반해 직업도 바꾸고 제주도에 서퍼들을 위한 식당을 열어 정착한 양진성 대표. [사진 양진성]

호주 유학 중 우연히 접한 서핑에 반해 직업도 바꾸고 제주도에 서퍼들을 위한 식당을 열어 정착한 양진성 대표. [사진 양진성]

식당 이름 ‘듀크서프비스트로’는 어떤 의미로 지은 건가요?
‘듀크’는 제주도 중문 ‘해녀의 집’ 앞 서핑 포인트의 이름이에요. 우리나라 최고의 서핑 포인트 중 하나로 1996년 우리나라 서핑계의 큰 스승 이창남 씨가 발견했어요. 그분의 닉네임인 듀크를 따서 이름을 정했다는데, 내가 이 포인트를 너무 좋아해 식당 이름으로 붙였습니다.

참고로 듀크는 올림픽 수영종목 금메달리스트이자 근대 서핑의 창시자로 하와이 사람입니다. 와이키키 해변에 가면 원주민 복장으로 서핑보드 앞에 두 팔 벌려 서 있는 동상을 볼 수 있는데요. 바로 듀크의 동상입니다.

국내에서 서핑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 됐는데,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2004년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가서 우연히 시작했어요. 영어도 배우고 일도 하면서 서핑 인명구조 봉사를 6개월 했는데 이때 서핑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거죠. 제가 부산 출신으로 해병대를 나와 수영, 스쿠버, 인명구조 등에는 능했는데 서핑은 처음 접했어요. 힘든 일과 차별 대우에 지쳐 자존감도 바닥을 쳐서 못 견딜 정도였는데 서핑을 하면서 힐링이 되는 걸 느꼈지요. 서핑이 제2의 인생을 선물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최고의 서핑 포인트로 손꼽힌다는 제주도 중문 ‘해녀의 집’ 근처 ‘듀크’. [사진 양진성]

국내 최고의 서핑 포인트로 손꼽힌다는 제주도 중문 ‘해녀의 집’ 근처 ‘듀크’. [사진 양진성]

그때 한국에는 서핑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 아닌가요?
맞아요. 2005년 귀국해 부산에서 취업하고 취미로 서핑했는데 해운대, 송정 등에 십여 명 모여 탈 정도였으니까요. 한 5년 직장생활과 서핑을 병행하다가 2010년 아예 제주도로 이사했습니다. 서핑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서요.
직장도 옮긴 건가요?
네, 제 전공이 기계공학이라 부산에서는 관련 일반 직장에 다녔어요. 제주로 이사 오면서 호텔 주방에 취직했죠.
양진성 대표가 서핑을 즐기는 모습. 보드에 올라 파도를 타면 공중부양하는 느낌이 들면서 해방감이 든다고 한다. [사진 양진성]

양진성 대표가 서핑을 즐기는 모습. 보드에 올라 파도를 타면 공중부양하는 느낌이 들면서 해방감이 든다고 한다. [사진 양진성]

서핑 식당을 운영하기 위한 계획으로 주방에 취직한 건가요?
당연하죠. 서핑하러 발리, 호주, 하와이, 캘리포니아 등을 여행했는데 어디 가나 서핑비스트로가 인기인 거에요. 서퍼들이 편하게 모여 맥주와 볶음밥, 튀김 등을 먹으며 교류하는 모습이 부러웠죠. 제주도에도 열어보자고 마음먹고 계획을 실천에 옮겼지요. 6년 동안 요리를 열심히 배워 2016년 지금의 ‘듀크’를 연 겁니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서핑을 즐길 여유가 되나요?
새벽에 일어나 한두 시간 서핑하고 출근해 문을 엽니다. 파도가 좋은 날은 문 닫고 나가 타기도 하고요. 서핑을 위해 식당을 열었는데 식당 일 하느라고 서핑을 못 하면 안 되잖아요.
오랜 준비 끝에 제주도 서귀포시에 문을 연 서퍼들의 휴식공간 ‘듀크서프비스트로’. [사진 양진성]

오랜 준비 끝에 제주도 서귀포시에 문을 연 서퍼들의 휴식공간 ‘듀크서프비스트로’. [사진 양진성]

‘서퍼비스트로’가 국내에는 생소한데요. 반응은 어떤가요?
서퍼들 사이에서 소문이 많이 나 괜찮은 편입니다. 서퍼들뿐 아니라 제주도에 머무는 외국인들도 많이 찾습니다. 서퍼들의 소울푸드인 피시타코와 제주나시고렝이 시그니처 메뉴인데 일부러 먹으러 오기도 합니다. 재료는 거의 제주도 현지에서 구하는데요. 존도리 생선, 구좌 당근, 애월 브로콜리, 한라산 표고버섯과 양배추 등을 아낌없이 사용합니다. 가끔 이벤트로 서퍼들이 서핑강연도 하고, 보드 등을 파는 프리마켓도 열고 있어요.
서핑의 매력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서핑은 식사와 같은 것입니다. 파도를 타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파도를 타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큰 파도에 도전하고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인생도 배우고 자신감도 갖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서핑에 딱 들어맞는 말이에요. 타 보지 않으면 아무리 들어도 실감할 수가 없습니다.

보드에 올라 파도를 타다 보면 공중부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현실감이 살짝 없어지면서 현실의 고단함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죠. 돈도 많이 안 들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정말 멋진 해양레저스포츠입니다.

‘듀크’의 대표 메뉴로 인기가 높은 피시타코와 제주나시고렝(왼쪽), 제주도 화산의 용암을 표현한 칵테일인 하루방토닉(오른쪽). 양 대표는 지금도 메뉴 개발과 연구를 위해 발리, 캘리포니아 등의 유명 서퍼 비스트로를 찾아다닌다. 연락했을 때도 메뉴 여행 중이어서 한참을 기다려 인터뷰를 했다. [사진 양진성]

‘듀크’의 대표 메뉴로 인기가 높은 피시타코와 제주나시고렝(왼쪽), 제주도 화산의 용암을 표현한 칵테일인 하루방토닉(오른쪽). 양 대표는 지금도 메뉴 개발과 연구를 위해 발리, 캘리포니아 등의 유명 서퍼 비스트로를 찾아다닌다. 연락했을 때도 메뉴 여행 중이어서 한참을 기다려 인터뷰를 했다. [사진 양진성]

거의 국내 서핑 1세대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물에서만 파도를 잘 타는 사람보다는 바다를 사랑하고 그 속에서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서핑을 사랑하는 서퍼가 되고 싶습니다. 바다에 들어가면 자연과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그 순간 정말 자유로워집니다. 이런 경험을 사랑하는 아들 건이, 원이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일단 제가 좋아하는 서핑과 요리를 함께 하고, 직업과 취미를 같이 하려고 식당을 열었지만, 앞으로 서핑 문화와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이바지할 기회가 생기면 기꺼이 동참하려고 합니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데 잘 자리 잡고 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원 중앙일보 사업개발팀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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