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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명곡 '돈 스톱 미 나우'가 청소년유해매체물이라고?

중앙일보

입력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전 보컬 프레디 머큐리. [중앙포토]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전 보컬 프레디 머큐리. [중앙포토]

영국 록밴드 퀸의 '돈 스톱 미 나우(Don’t Stop Me Now)'는 과연 청소년 정서에 유해한 노래일까.

방심위, 노래 내보낸 KBS '불후의 명곡'에 권고 조치 #'엑스터시''섹스머신'가사에 8년전 청보위,유해물 결정 #12세관람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형평성도 도마 #전문가들 "대중의 상식과 눈높이 맞는 심의 해야" 지적

퀸의 음악을 대표하는 명곡 중 하나이자, 몇해 전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팝송 1위에 오르기도 했던 이 노래의 '유해성' 논란이 일고 있다.
발단은 지난 2월 23일 방송된 KBS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퀸 특집에서 가수 김종서가 '돈 스톱 미 나우'를 부른 것에 대해 한 시청자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청소년들도 보는 주말 저녁시간대에 어떻게 19금 노래를 내보낼 수 있느냐'가 민원내용의 골자였다.
방심위는 이에 대해 심의한 결과, 최근 KBS '불후의 명곡'에 행정지도인 '권고' 결정을 내렸다. 가장 미약한 수준의 처분이긴 하지만, '돈 스톱 미 나우'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고시된 노래인만큼 향후 이 노래가 다시 전파를 타지 않도록 유념하라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KBS2 '불후의 명곡' 퀸 특집에서 '돈 스톱 미 나우'를 부르는 가수 김종서. [사진 KBS]

KBS2 '불후의 명곡' 퀸 특집에서 '돈 스톱 미 나우'를 부르는 가수 김종서. [사진 KBS]

방심위 관계자는 "시청자 민원이 제기된 이상 노래의 유해성 여부를 심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노래가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청보위)에 의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돼있기 때문에 이를 방송한 프로그램에 주의 조치를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돈 스톱 미 나우'를 청소년유해물로 분류한 청보위의 기준을 따랐을 뿐이란 설명이다.
그러면 애초에 청보위는 왜 이 노래에 19금 딱지를 붙였을까. 이 노래가 청소년유해물이 된 건 꽤 오래전 일이다.
2011년 당시 청보위 심의위원들은 'I’m floating around in ecstasy' (나는 황홀함에 싸여 떠다니지) 'I am a sex machine ready to reload' (나는 재장전될 준비가 돼있는 섹스머신) 등의 가사가 선정적이란 이유로 노래를 청소년유해물로 지정했다. 엑스터시가 마약의 한 종류이고, 성행위를 뜻하는 '섹스'라는 단어까지 나온 이상 청소년들에게 이 노래를 듣게 해선 안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ecstasy가 원래 '황홀함'이란 뜻이고, sex machine의 의미가 '섹시한 사람'이란 점은 고려하지 않았다.

여가부 관계자는 "노래의 전체 맥락을 봐야 하지만, 구체적인 단어 하나에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게 음반심의의 현실"이라며 "당시 심의위원들은 주로 구체적인 단어를 보는 외국곡 심의 패턴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가 열창하고 있다. [사진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가 열창하고 있다. [사진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사진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사진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하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인 관점에서 행해진 예전 심의기준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노래를 둘러싼 변화된 세태, 듣는 이들의 의식변화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결국 '구시대적' 기준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돈 스톱 미 나우'는 지난해 말 전국을 강타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 덕에 싱어롱 상영관에서 수도 없이 '떼창'으로 불려졌고, 가사 논란에 상관없이 삶에 지치고 소외된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노래가 됐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돈 스톱 미 나우'가 청소년유해물이란 판정에 대해 상식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며 "시적 허용을 담은 노래 가사를 단어 몇 개를 갖고서 기계적으로 심의하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음악이란 원작자의 의도보다도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정서가 더 중요하다"며 "이런 부분을 반영해야 대중의 상식과 눈높이에 맞는 심의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청보위는 '사람을 죽였다'(Mama, just killed a man Put a gun against his head, 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는 가사를 담은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 살해한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 자신의 자아(自我) 또는 남성성이라는 '콘텍스트'적 해석을 달아, 청소년유해물로 지정하지 않았다. 단어 몇 개의 선정성을 들어 '빨간' 딱지를 붙인 '돈 스톱 미 나우'와는 너무나 다른 심의 기준이란 지적이다.
영화·라디오·광고 등 다른 매체들과의 형평성도 도마에 올랐다.
'돈 스톱 미 나우' 등 퀸의 수많은 명곡이 담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해 영상물등급위원회는 '12세 이상 관람가' 결정을 내려 수많은 청소년들이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8년 전 여가부 청보위와는 상반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돈 스톱 미 나우'는 영화 흥행에 힘입어, 수도 없이 라디오 전파를 탔고, 광고 음악으로 사용된 지도 오래 됐다. 결과적으로 영화·라디오의 '돈 스톱 미 나우'는 청소년에게 전혀 유해하지 않고, TV방송의 '돈 스톱 미 나우'만 유해한 음악이 돼버린 셈이다.
여가부 또한 매체에 따라 다른 잣대에 대해 적잖이 곤혹스러워하는 눈치다.
여가부 관계자는 "다음주 열릴 예정인 음반위원회에서 음악산업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본 뒤,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돈 스톱 미 나우'를 재심의에 올릴 것"이라며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수용력의 변화에 따라 노래가 더 이상 유해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유해물 결정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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