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경제, 성공으로 가고 있다”라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나는 지난 2년 대통령이 어떤 창을 통해 세상을 보나 궁금했다. 전공 분야라는 검찰이나 북한은 그렇다 치고 경제를 잘 모르는 대통령이니 청와대 참모들 눈으로 경제를 본다고 생각했다. 1기 멤버인 장하성 정책실장, 홍장표 경제수석, 김현철 경제보좌관의 말과 글과 발만 열심히 좇았다. 참모들의 생각을 바꾸면 대통령 생각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참모들의 잘못된 정책과 주장과 통계를 열심히 반박하고 비판하고 지적했다. 내 지력이 달리면 주변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었다. 두드리면 열리리라.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소신에 #‘노’라고 말하지 않으면 #자신의 영혼마저 빼앗기게 된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다 헛수고였다.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대통령이 오직 자신의 눈으로만 경제를 본다고 생각한다. 다른 눈을 가졌더라도 대통령 눈에 맞추게 한다. 정통 재무관료 출신의 윤종원 씨가 경제수석이 됐을 때, 나는 짐짓 기대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의 눈은 대통령과 같아졌다. 소득주도성장이 옳은 길이라고 주장하고, 최저임금의 과속을 비판하지 않으며, 펀더멘털과 거시경제는 튼튼하다고 말하고 경제 위기론에는 눈을 감았다. 하기야 대통령이 “다른 의견을 많이 내라”고 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어찌 매번 하겠나. 듣지 않으려는 주군에게 목을 걸고 간언하는 신하 따위는 지금 정부에서 기대해선 안 될 일인 것이다. 그러니 모두 대통령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예가 있다. 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이달 초 뉴욕타임스에 칼럼 하나를 기고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각료들의 영혼을 먹어치우는 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영혼의 잠식은 침묵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트럼프의 거짓말에 침묵하다 보면 어느 틈에 트럼프의 동료가 돼 있다는 것이다. 코미는 “자신의 취임식이 역사상 가장 성대했다”는 트럼프의 말을 부인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그에게 동조한 셈이 됐다고 적었다. 코미는 현직 관료에 대한 경고로 글을 맺었다. “계속 거기 머물러 트럼프의 언어를 쓰고, 트럼프의 리더십을 칭송하다 보면, 마침내 그가 당신의 영혼을 먹어치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가. 스타일이 다를 뿐 본질은 같다. 트럼프가 쉴 새 없이 떠벌이면서 각료와 국민에게 침묵의 동의를 요구한다면, 문 대통령은 듣는 모양새는 갖춘 뒤 ‘답정너’라고 말하는 게 차이일 뿐이다. 대통령의 기·승·전·북한, 적폐청산, 소득주도성장도 그래야 이해가 된다.

취임 2년을 맞은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대통령은 중소·벤처기업인과의 대화(1월 7일), 기업인과의 대화(1월 15일),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2월 7일) 자영업·소상공인과의 대화(2월 14일) 외국인투자 기업인과의 대화(3월 28일) 경제계 원로와의 대화(4월 3일) 사회 원로와의 대화(5월2일)를 잇따라 가졌다. 듣는다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을 동결해달라”고 말하면 대통령은 “길게 보면 인상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업종별·지역별 차등화라도 해달라”면 “보완해 가겠다”며 두루뭉술 넘어갔다. “소득주도성장의 성과가 빈약하다”는 말엔 “경청했다”가 전부였다. 급기야 14일엔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곳곳에서 쏟아지는 위기지표는 아랑곳없다. 그러니 듣기 위한 게 아니라 ‘국민 설득용’ 쇼라는 불만이 나오는 것 아닌가.

2년간 해봤으면 이젠 됐다. 2년 새 한국의 최저임금은 국민 소득(GNI)에 견줘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더 오를 곳도 없다. 그런데도 양극화는 심해졌고, 빈곤층의 삶은 더 어려워졌으며, 경제는 뒷걸음치고 일자리는 쪼그라들었다. 잘못된 길이라면 뒤로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 “노”라고 말하지 않는 청와대 경제팀부터 확 바꾸라. 대통령에게 영혼을 먹힌 관료는 기껏해야 확성기 노릇밖에 할 수 없다. 하기야 부질없는 짓이다. 대통령의 머릿속을 바꿀 수 없다면 경제팀을 수없이 바꾼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남은 3년 국민의 영혼마저 먹힐까 암울할 뿐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