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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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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호 30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내내 뭉개고 있다가 또 국민 주머니 털기에 나섰다. 노선버스 요금 인상 얘기다. 주 52시간에 맞춰 운전기사 늘리고 배차 간격 유지하려면 당장 1조5000억원이 더 들어간다. 요금 올리든 정부가 지원하든 결국 물주는 국민이다. 나랏일을 이렇게 쉽게 하나. 그러려면 왜 그런 중책을 맡았나. 정책 책임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책도 없이 팔짱 끼고 있다가 국민 부담 늘려 되는 일이면 장관·수석·시장 노릇 못 할 사람이 없다.

일단 지르고 실패 비용은 국민에게 #소비 위축되고 저성장 악순환 우려

이 정부는 세금 만능주의, 재정 만능주의에 빠졌다. 최저임금 덜컥 올린 게 대표적이다. 부작용이 전방위적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수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예고한 대로다. 경제적 취약계층이 일자리를 잃고 자영업자는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실업자 125만명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식당만 가 봐도 서빙이 느릿느릿하다. 직원을 내보냈기 때문이다.

동네 세차장에 가도 부담스럽다. 5만원 이상 주유하면 제공되는 세차권이 2017년 5000원이었다. 지난해 1월에는 ‘최저임금 인상 여파를 반영한다’면서 6000원이 됐다. 올해 3월부터 7000원으로 다시 뜀박질했다. 최저임금발 생활물가 인상이다. 5000원에서 7000원이면 40% 인상됐다는 얘기다. 그 충격은 2년간 최저임금 인상률(29.1%)을 뛰어넘는다.

정부는 자영업자들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하지 못하자 재정을 동원해 일자리안정자금에 해마다 3조원을 쏟아붓고 있다. ‘닥치고 돌격’이 된 주 52시간제도 마찬가지다. 이 여파로 오른 요금은 오롯이 버스의 상시 이용자인 서민 부담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녹을 먹는 정부 책임자들의 도리가 아니다.

국민은 세금을 피할 수 없다. 오죽하면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거두자’는 관료들의 속삭임이 정부의 조세 관행이 되었겠나. 이 정부는 국민 주머니가 화수분인 양 아예 대놓고 깃털을 뽑고 있다. 조세부담률(21.2%)은 물론 사회보장 비용을 포함한 국민부담률(27%)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국민은 늘어나는 세 부담에 비명을 지를 지경이다. 그런데 정부는 올해 470조원의 수퍼예산도 모자란다며 내리 3년째 추경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서민 소득이 늘고 삶이 나아졌으면 좋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저소득 가구의 근로소득은 줄었고 소득 양극화는 악화일로에 있다. 국민은 고통을 받는데도 정부는 현실과 괴리된 소비자물가지수(0.5%)를 제시하면서 물가가 안정돼 있다고 자랑한다. 소비가 둔화한 전자제품이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돼 전체 지수는 낮지만, 생활물가는 무섭게 오르고 있다. 이번 주말에 당장 시장에 나가봐라. 바구니에 주워 담기 무섭다. 올해 1분기 인상률이 쌀 18.5%, 콩 21.4%, 닭고기 10.9%, 낙지 21.1%, 복숭아 22.6%에 달한다.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제품의 물가는 다락같이 올랐다.

게다가 이런 막무가내 정책이 없다. 비 올 때 우산 뺏는다더니 이란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환율까지 치솟는 시점에 정부는 한시적 유류세 인하분을 이달 7일부터 단계적으로 환원하고 있다. 이번에도 부담은 오롯이 생계형 서민이 짊어질 판이다. 문 대통령 취임사 구절처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아닌가.

쓸 돈이라도 늘었으면 감당하련만 현실은 거꾸로다. 지난해 가구소득은 4.1% 상승했다. 하지만 세금은 11.4% 늘어났다. 게다가 사회보험료는 5.8% 뛰었다. 가처분소득은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번듯한 중산층이라고 형편이 나을까. 올해 아파트 공시가격이 20% 안팎씩 오르면서 늘어난 재산세가 수십만에서 수백만 원에 달한다. 결국 국민은 허리띠 졸라맬 수밖에 없다. 거위털 뽑다가 저성장의 악순환에 갇힐까 걱정된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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