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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 서열 확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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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보건복지부 감사관은 2급 공무원이 가던 자리였다. 이 부서의 국민연금정책관은 3급 국장이 임명됐었다. 둘 다 승진을 앞두고 가는 중요 보직이었다. 하지만 이달 시작된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상황을 확 바꿔 놓았다. 중앙인사위가 기존의 1~3급을 한꺼번에 묶은 뒤 중요도에 따라 가~마로 새롭게 설정한 직무 등급에서 상당수의 자리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복지부의 경우도 감사관(2급)이 라 등급, 연금정책관(3급)이 다 등급으로 결정됐다. 아래.위가 바뀐 것이다. 연금정책관이 감사관보다 현재의 계급은 낮아도 일의 중요도나 난이도가 더 높다고 중앙인사위는 판단한 것이다.

중앙인사위원회는 6일 고위공무원단에 포함된 1240개 직위에 대한 직무분석을 끝냈다. 내용은 정부 전 부처에 통보됐다. 공직 사회는 본격적으로 '태풍'을 맞게 됐다.

◆ 아래.위가 뒤바뀐다=인사위는 "앞으로는 공무원도 계급이 아닌 업무 중요도에 따라 사람을 골라 쓰고, 보수도 그에 맞춰 지급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이런 기준에 따라 이뤄진 직무등급 평가에서는 예상대로 계급 역전 현상이 두드러졌다. 기존에 1급 공무원이 배치되던 221개 자리는 대부분 가.나 등급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재정경제부 1급이 파견됐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재관 자리는 라 등급으로 분류됐다. 1급 자리 중 28개(13%)가 다 등급 이하로 분류됐다.

<표 참조>

반면 2급 자리였던 국방부 자원관리본부장은 나 등급에 배정됐다. 3급 직위는 대부분 마 등급으로 갔지만 다.라 등급으로 '영전'한 자리도 99개가 나왔다.

◆ 분류 기준도 달라졌다=같은 부처의 같은 계급이라도 정책수립 자리가 정책집행 자리보다 한 단계씩 높게 평가됐다. 예를 들어 본부의 1급 자리는 대부분 가 등급으로 분류됐다. 반면 산하 기관장들은 나 등급으로 결정됐다. 행자부 본부의 지방행정본부장(1급)은 가 등급을 받았지만 같은 1급인 각 시.도의 행정부지사는 나 등급으로 분류된 식이다. 하지만 농업과학기술원장.국립환경과학원장.국립수산과학원장 등 과학기술.연구 직위는 상대적으로 높은 직무등급을 받았다.

중앙인사위 김영호 사무처장은 "연구 업무의 전문성과 창의성, 과학기술 연구 성과의 경제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인사위는 직무등급이 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체 직위의 56.3%를 하위 등급인 라.마 등급에 배정했다고 밝혔다.

◆ 술렁이는 공직사회=지난주 공직사회에는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잠정 결정된 직무등급 내역이 부처별로 사전 통보됐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 나 등급으로 결정된 외청장들의 반발이 심했다.

고위공무원은 앞으로 직무등급에 따라 연봉을 받는다. 예전에 1급이었어도 마 등급으로 분류됐으면 가 등급 직위보다 최소 960만원의 연봉을 덜 받게 된다. 후배보다 월급 적은 선배도 적잖이 나오게 됐다. 인사위는 반발을 의식, 연봉 지급은 내년 이후 새 인사 때부터로 미뤘다.

업무중심형 인사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과거엔 1급 공무원을 3급 직위에 보임하면 옷을 벗으라는 얘기였다. 반대로 아무리 뛰어나도 3급이 1급 자리에 갈 수 없었다. 앞으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가능하다. 계급 구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사적체 해소를 위해 외부 파견을 보내는 이른바 '인공위성' 관행도 사라질 전망이다. 파견직의 직무등급이 현직보다 상당히 낮게 분류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처마다 50%의 자리를 민간인.타 부처 공무원과 경쟁해야 한다.

◆ 일단 함구한 인사위=파장이 만만치 않자 중앙인사위는 이날 직무등급별 비율만 밝히고 구체적인 직위의 등급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어느 부처에 상대적으로 높은 등급의 직위가 몰렸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직위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알수 없게 됐다. 일단은 공무원끼리만 알게 됐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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