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측 지식인들 "평화 공존에 찬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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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바라보는 국내 진보 측 지식인들의 마음은 당혹스럽고 착잡하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쌓아온 평화공존 분위기가 일거에 파괴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크다. 이번 사건의 여파로 남한 진보 진영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 교수는 "햇볕정책을 지지해 온 지식인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사태"라며 "동북아 평화공존을 위해 북한이 더 이상 이 같은 벼랑 끝 전술을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도 좀 더 북한과의 대화에 성의를 보임으로써 9개월 넘게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6자회담의 불씨를 다시 살려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번 사건은 동북아 안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 같다"고 우려하면서 "북한과 미국 모두 이성적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분명히 선을 긋고 비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뉴레프트(신진보)를 표방한 좋은정책포럼의 공동대표 김형기(경북대 경제학) 교수의 발언이다. 김 교수는 "미국 매파들의 보수적 발언을 강화시키고 일본의 재무장을 촉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나아가 그는 "국내외적으로 모두 부정적 결과만 예상되는 상황이었는데도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이라는 벼랑 끝 전술을 밀어붙였다"며 "이번 사태가 남한 진보 진영의 입지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활발히 전개돼 온 남북 민간교류의 한계도 지적됐다. 서동만(상지대 정치학) 교수는 "김대중 정부 이후 축적돼 온 남북 신뢰가 무너지고 남북 관계는 후퇴의 길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남북 민간교류의 한계를 절감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성과를 살려가는 방향으로 사태가 진행됐으면 한다"며 "지난해 9월의 6자회담 성과에만 의존한 채 우리 정부가 북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데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도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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