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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자취 따라…20년 만에 안동 찾은 영국 로열패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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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4일 안동 하회마을에서 앤드루 영국왕자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대신해 생일상을 받았다. [뉴시스]

14일 안동 하회마을에서 앤드루 영국왕자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대신해 생일상을 받았다. [뉴시스]

“20년 전 어머니가 다녀간 안동 이곳저곳을 돌아보게 돼 기쁩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차남이자 왕위 계승 서열 8위인 앤드루(59) 왕자가 1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이 있는 경북 안동을 찾았다. 20년 전인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안동행을 기념해서다.

14일 여왕 차남 앤드루 왕자 방문 #담연재선 어머니 생일상 대신 받고 #“안동서 살면 1000년 사냐” 농담 #신발 벗고 봉정사 법당 들어가기도

지난해 말 박은하 주영 한국대사는 여왕을 만난 자리에서 “왕실 가족을 한국에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2019년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한국을 다녀간 지 20주년 되는 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여왕은 “안동 하회마을에서의 추억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며 안동 방문을 약속했다. 여왕이 약속을 지키면서 왕실을 대표한 앤드루 왕자의 안동행이 성사된 것이다.

앤드루 왕자는 헬기를 타고 이날 오전 11시 20분쯤 안동에 있는 경북도청에 도착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안내를 받으며 도청을 둘러보고 방문 기념으로 반송(소나무)을 심었다.

그는 어머니가 다녀간 하회마을로 곧장 향했다. 서애 류성룡(1542~1607) 종택인 충효당을 먼저 찾았다. 충효당엔 영국 여왕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20년 전 여왕은 충효당에 오르면서 신발을 벗고 올랐다. 서양에선 발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어 당시 외신 기자들이 여왕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했다는 이야기다.

앤드루 왕자는 충효당 마당에 심어 놓은 구상나무를 한동안 살펴봤다. 여왕이 20년 전 심고 간 나무다. 그는 구상나무 옆에 세워진 ‘로열 웨이’ 표지판에도 눈길을 줬다. 로열 웨이(Royal Way)는 여왕이 하회마을과 농산물도매시장, 봉정사를 돌아보며 지나간 길(32㎞)에 붙여진 이름이다.

여왕이 20년 전 생일상을 받은 모습. [중앙포토]

여왕이 20년 전 생일상을 받은 모습. [중앙포토]

고택인 담연재에서 그는 여왕의 생일상을 대신 받았다. 93세인 여왕의 생일은 4월 21일. 하지만 안동 방문 20주년을 기념해 안동시가 한 번 더 생일상을 차렸다. 도미찜과 육포 등 47가지 전통 한식으로 이뤄진 상차림이다. 왕자는 여왕에게서 받아온 메시지를 대신 읽었다. 그는 “어머니는 ‘99년 한국을 찾아 많은 곳을 방문했는데 참으로 훌륭했다. 특히 하회마을에서 생일상을 받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경북과 안동에 좋은 일만 있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전했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한지 두 세트와 그릇인 수반을 기념 선물로 전달했다. 한지를 선물하며 권 시장이 “1000년 전통을 이어온 한지”라고 소개하자 왕자는 “안동에서 살면 1000년을 살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 웃음을 자아냈다.

왕자는 학록정사로 옮겨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를 관람하고, 여왕 사진 등이 전시된 행산고택과 하중재 등을 돌아봤다. 그는 20년 전 여왕이 들렀던 안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도매시장에서 사과를 선물 받은 그는 “귀국하면 어머니에게 사과를 꼭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왕자는 봉정사를 찾아 20년 전 여왕이 한 것처럼 범종을 타종하고 돌탑까지 쌓은 뒤 대웅전을 돌아봤다. 여왕이 그랬던 것처럼 법당에 오를 때 신발을 벗어 눈길을 끌었다. 봉정사 측은 ‘대영제국’을 주제로 한 사행시 족자를 선물했다. 또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세계기록유산 퇴계집 책판인 장판각을 챙겨보고, 왕의 열 가지 도리를 적은 ‘성학십도(聖學十圖)’ 책자를 선물 받는 것으로 안동행을 마무리했다.

안동=김윤호·김정석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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