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학생, 성적처리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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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지를 훔치려다 적발된 학생에게 담임교사가 "시험을 잘 보라"고 얘기해놓고 0점 처리를 했다면 이 교사는 학생을 속인 것일까.

서울 모 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인 A(18)군은 4월 중간고사를 하루 앞두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 자정 무렵 퇴교길에 창문을 넘어 교무실에 몰래 침입했다. A군은 중간고사 시험지를 훔쳐보려다 무인경비시스템이 작동하는 바람에 출동한 경비업체 직원들에게 붙잡혀 학교 인근 파출소에 넘겨졌다. 경찰에서 조사를 받은 A군은 담임교사로부터 "아무 일 없을테니 중간고사를 잘 보라"는 말을 듣고 새벽 3시쯤 귀가했다.

A군은 담임교사의 말처럼 중간고사에 응시했고, 전 과목 평균 90점의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10여일 뒤 학교 선도위원회가 열렸고, 위원회는 A군에게 "학교 인근 사회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상담교육을 받으라"고 결정했다. 그나마로 끝나는 게 다행이라고 여겼던 A군은 위원회의 결정대로 복지관을 찾아가 5일간 봉사활동을 하고 상담교육까지 받았다.

다 끝난 줄 알았던 사건은 한달여만인 지난달 26일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학교 성적관리위원회가 A군에게 "전학과 중간고사 성적 0점 처리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하라"고 결정하면서다.

위원회측은 "명백하게 잘못을 저지른 A군에게 온정을 베푼다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그러자 A군측은 6일 "학교측이 초중등교육법 18조(학생의 징계)에 명시된 학생이나 학부모의 의견진술 과정도 거치지 않았고,담임교사와 선도위가 허위통보를 해 신뢰보호의 원칙을 위배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성적처리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의과대 진학을 희망하는 A군은 중간고사가 0점 처리될 경우 기말고사에서 99점을 받아도 내신이'양'으로 처리된다.

학교측은 "선도위는 처벌 내용을 결정할 뿐이고, 성적에 관련된 결정은 성적관리위가 별도로 하는 것"이라며 "학교가 신뢰보호의 원칙을 위배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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